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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초고령화 시대, 농촌 경관 관리를 누가 할 것인가?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이사
    • 작성일2025/03/25 14:58
    • 조회 6
    정리정돈 잘된 일본의 농촌과 대조적
    현장 가까이 민관협력체계 갖춰야 성과
    민간법인 설립, 정책 칸막이 극복을


    농촌의 봄은 마냥 아름답지 않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나물이 넘쳐나는 생동의 계절이지만, 경관환경만으로 보자면 가장 쓸쓸한 계절이다. 특히 겨울철 눈이 녹아 지면이 드러나고 북서풍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맘때가 가장 심각하다. 하천이나 풀숲 속에는 깡통, 플라스틱 쓰레기가 방치되어 날 것 그대로 드러난다. 하천변 나무에는 지난 여름 장마철에 떠내려 온 비닐이 가지마다 매달려 있다. 도로변 전봇대에도 미처 수거하지 못한 멀칭 비닐이 까마귀마냥 나풀거린다. 도로변에도 잡풀이 무성하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성 외래식물이 점령하고 있다. 방치된 빈집은 폐허 상태가 더욱 심각하여 쓰레기 집합소 같다.

    일본 농촌을 오랫동안 다녀본 경험으로 보자면 너무나 대조적인 경관환경이다. 지난 2월에도 일본 큐슈의 농촌마을을 둘러보고 왔는데, 함께 간 주민과 활동가들은 하나같이 정리정돈이 잘된 모습에 놀란다. 집집마다 마당은 꽃으로 잘 정리되어 있고, 생울타리 담장으로 생기가 넘친다. 마을 안을 걸어보아도 버려진 쓰레기를 찾기 힘들다. 논밭 두렁은 잔디밭처럼 깔끔하고, 수로도 막힌 곳 없이 물이 잘 흘러간다. 큰 도로도 차도와 인도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자전거 타거나 걷기에 좋다. 멀리서 높은 사람이 방문한다고 며칠간 열심히 청소한 것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친일파’ 소리를 들을 것 같지만, 경관환경만 보자면 일본 농촌은 공유자원으로서 잘 관리되고 있다.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우리로 치면 읍면마다 농지위원회가 있어 소유자가 명확하게 특정되고, 마을 공동활동도 역사적으로 단절되지 않은 채 수백 년간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국민성까지 논하면서 우리의 주민의식을 탓한다. “일본은 국민의식이 높다”는 것으로 퉁치는 경향이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훨씬 복잡한 이유들이 숨어 있다. 한국도 농촌 전부는 아니라 해도 주민들이 열심히 대청소를 하고 때마다 예초기를 돌리는 마을은 많다. 초고령화라는 시대적 추세를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상황이고, 오히려 일본이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차이는 어디서 나타나는 것일까?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낼까?

    농촌의 경관환경 관리는 지역사회의 총량적 힘을 보여준다. 주민들의 일상적인 수고로움이 반복적으로 더해져야 비로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 자체가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무리하지 않아도 될 정도여야 농업과 경관환경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또 주민 스스로 마을의 얼굴이라 여기며 개개인의 활동을 반복하고, 나아가 공동활동으로 대응해야 농촌다운 경관환경도 만들어진다. 몇몇 사람만의 노력으로 드러나는 성과가 아닌 셈이다. 여기에 행정과 마을 주민의 적절한 역할분담과 협력적 관계가 발전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종합예술 같은 것이다. 그래서 경관협정은 ‘마을만들기의 꽃’은 불릴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제도라고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초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신음하며 선주민과 후주민의 갈등이 심각한 한국 농촌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선조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적인 공동체 역량이 쇠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때가 되면 열심히 대청소를 한다고 하지만 개발(투기성) 요구가 심각한 상태에서 문제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자원봉사로 마을 주민 스스로 해야 할 일과 공공행정이 해야 할 일은 어떻게 구분될까? 행정사무로 조례에 규정할 일은 무엇이고, 중간지원조직 설치도 필요한 일일까? 이런 여러 의문들이 생긴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해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런 난개발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또 방치된 경관환경 관리 책임을 어떻게 배분할지, 그 방향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국민성 운운하는 것으로는 대책이 없다.

    일단 원인 진단은 여러 측면에서 가능할 것이다. 첫째, 마을 주민들의 초고령화와 인구 감소, 높은 이동성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쉽게는 이런 인구적 측면에서 원인을 지적할 수 있다. 둘째, 공공행정의 역할이 너무 최소한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점도 한 원인이다. 현재는 많은 역할을 마을 주민과 민간단체에 보조사업 일부로 대응하는 정도라 할 수 있다. 셋째, 농업 구조 자체가 생산성 향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주민자치 관점이 너무 약한 탓도 크다. ‘농업·농촌의 다원적·공익적 가치’라는 고상한 표현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도시민을 위한 식량공급기지, 체험관광지 역할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앞에서 제기한 원인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데, 무엇보다 ‘읍면자치’라는 관점에서 지역사회 자치역량을 강화하면서 통합적이고 체계적이며 중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농촌 현장 가까이에 민관협력의 추진체계를 잘 갖추어야 비로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일본처럼 읍과 면이 자치단체라면 공공행정과 민간 사이의 역할분담과 협력체계가 훨씬 더 잘 작동될 수 있다. 이를 보완하는 방향에서 주민자치회가 충분히 토론하여 경관환경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그 결과를 행정이 수용하여 시행하면 역할분담도 적절하게 나눠질 것이다. 이처럼 주민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면 난개발도 사전에 예방되고, 계획적인 공간관리도 더 잘 될 수 있다.

    그리고 민간 전문조직으로 법인 설립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 모든 읍면 단위로 경관환경을 담당하는 민간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한다면 정책 칸막이를 극복하고 좋은 사례도 빨리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재원은 지방소멸대응기금과 고향사랑기부금을 읍면 단위로 배분한다면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훨씬 효과적으로 집행될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농업방식을 개선하고 먹거리체계를 재조정하는 등 훨씬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도로와 하천을 초고령화 시대에 맞추어 관리하기 좋도록 정비할 필요도 있다. 중경예초기와 같은 농기계도 널리 보급하고 이를 운용할 교육 시스템도 필요하다. 또 지리정보시스템(GIS)이나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적 발전의 성과도 수용하여 경관환경 관리 시스템에 적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여 문제해결에 적용할 민간 법인이 읍면 단위로 하루빨리 설립되어야 선진적인 성과도 축적할 수 있다. 봄이 되어 농촌 길을 걷다보니 다시 떠오르는 당면과제라 거듭 제안해본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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