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역에 주목하는가  
- 지역재생의 논리와 과제 -

계간농정연구 '21세기 한국 농정의 과제 _ 통권 33호(2010 봄호)
박진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 지역재단 상임이사

 농촌 사회의 붕괴, 위협받는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

 

1) 붕괴하는 농촌

 Image1.jpg   우리나라의 농촌 인구(읍면 인구)는 1970년 1,850만명(전체 인구의 58.8%)에서 2005년 876만명(18.1%)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고,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중은 같은 기간에 4.2%에서 18.1%로 증대하였다. 이 통계는 얼마나 농촌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나 평균적 통계는 진실의 일부만 이야기할 뿐이다. 농촌형 중소도시 나주시의 예를 보자. 나주시의 인구는 1970년 227,261명에서 2005년에는 98,770명으로 57%나 감소하였고 지금도 매년 천명 이상 씩 줄고 있다. 세대 당 인구는 같은 기간에 5.6명에서 2.3명으로 줄었다. 자식들은 모두 떠나고 홀로 사는 노인 또는 노인부부 2인 가족이 보편적인 모습이다. 2007년 현재 나주시의 고령인구 비율은 평균 21%이지만, 시 지역(동)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읍면지역은 인구의 3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들이다. 자연부락 단위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60세 넘은 청년(?)이 가장 젊은이인 마을이 적지 않다. 태어나는 아이는 없고, 돌아가시는 노인들만 계시니, 머지않아 문을 닫아야 할 ‘자연 양로원’이 적지 않다. 명색이 시 지역의 형편이 이러하니 군 지역의 사정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표 1>에서 참고로 몇몇 지역의 인구추이를 보자.
 

표 1. 농촌지역의 인구 추이(1965~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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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협받는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

    농촌사회는 붕괴되었지만, 한국사회는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가난한 농업국이었던 한국은 1960년대 후반 이후의 고도성장을 통해 2008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9,231달러로 2만 달러에 육박하고, 경제규모는 세계 15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러한 급속한 성장의 와중에 국민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속히 저하하여,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농업구조조정이 이루어져,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5년 37.6%에서 2005년 3.4%로 크게 하락했다.

    농촌사회 붕괴의 대가(?)인 고도성장으로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행복해졌는가.
    일인당 국민소득, 교육수준, 문맹률, 평균수명으로 평가하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177개국 가운데 26위로 상위권에 속해 있다. 그러나 세계행복지수는 세계 178개국 가운데 102위로 나타났다. 특히, 흡연율과 자살사망률, 그리고 교통사고 사망률 각 세계 1위, 양극화(상대적 박탈감)와 이혼 증가율 역시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농촌사회가 과소의 불이익으로 붕괴의 위기에 직면한 반면, 도시는 집적의 불이익으로 교통문제, 환경문제, 주거문제, 교육문제, 실업문제 등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또한 수입농산물의 증대로 국민 식생활이 위협받고 있고, 도시의 사회적 생활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삶의 질은 세계 215개 도시 가운데 86위이고, 세계 10대 도시 가운데 꼴찌로 나타났다.

    농촌사회의 붕괴로 식량안보, 농촌지역사회의 유지 발전, 국토 및 환경 보전, 전통 및 문화의 계승, 인간교육의 장, 도시민을 위한 휴양 공간 등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가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국민의 먹을거리 기본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날 농촌사회의 붕괴는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의 총체적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즉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 고용 없는 저성장,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원자재와 시장 등 경제적으로 대외의존도가 높아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또한 생태계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즉, 과도한 화석 에너지에 대한 의존과 흙, 물, 삼림자원의 파괴, 자연 약탈형 농법 등으로 생태계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공간적으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즉, 도시와 농촌의 격차 심화, 대도시 특히 수도권 일극으로의 집주이 심화되어 공간적 지속가능성의 위기에 처해 있다. 끝으로 사회문화적으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즉, 공동체 정신의 파괴,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배려 부족, 전통 및 문화의 위기, 풀뿌리 민주주의 위기, 지역주체성의 위기 등 사회문화적 지속가능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3) 농촌사회 붕괴의 원인 : 국가 프로젝트의 산물

   
한국 농촌사회의 붕괴는 이른바 ‘페티의 법칙’으로 불리는 산업구조의 전환과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성장제일주의와 경제제일주의 정책에 따라 추진된 수출주도의 불균형 공업화와 대기업(재벌)과 대도시 중심의 성장전략, 그리고 세계화와 시장개방, 경쟁력지상주의 농정이라는 국가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이러한 국가 프로젝트 과정에서 우리 농업과 농촌은 국민경제에서의 올바른 위치를 상실하고 고도성장을 위한 희생양으로 치부되었다. 즉 개발독재시기에 농업과 농촌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값싼 농산물, 값싼 노동력, 값싼 농지와 수자원의 공급자로서의 역할만이 일방적으로 강요되었고, 세계화 시기에는 성장의 걸림돌로 인식되어“농업보호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농촌과 농업은 고도성장의 과실(떡)로부터 소외되고 농촌주민은 일부가 떡 고물만을 분배(시혜)받은 반면,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지불했다. 즉, 대량 이농과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농촌사회의 유지 기반 자체가 붕괴되고, 농촌은 인간의 삶의 공간이 아니라 하루 빨리 떠나야 할 버려진 땅으로 인식되어 이농의 악순환 현상이 전개되었다.

    현재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전체적으로 25% 수준, 쌀을 제외하면 5% 이하로 떨어졌다. 녹색혁명은 쌀의 자급에는 기여하였지만, 식량자급 수준을 크게 떨어뜨리고 농업과 농촌의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했다. 생산성과 국제경쟁력 제일주의 농정으로 인해 농업은 지역자원 순환형 산업으로부터 석유에너지와 해외 수입 사료에 의존하는 대외 의존형 산업으로 전락하게 됐다. 또한 생산성 제일주의 농정은 농업 경영비의 증대와 농업수익률의 저하, 그리고 농가부채의 증대를 초래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지역 - 위기 그리고 기회

1)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신자유주의는 우리 주변의 일상적 용어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란 말이 지니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괴리로부터 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 자본주의는 포드시스템과 복지국가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로 황금시대(golden age)를 맞이하였다. 포드시스템은 높은 생산성과대량생산을, 높은 생산성은 높은 임금을, 그리고 높은 임금은 대량소비를, 대량소비는 고이윤을, 고이윤은 고투자와 고생산성이라는 호순환과정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러한 호순환 생산시스템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복지정책으로 보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는 미국경제의 위기(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와 두 차례의 오일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장기불황)에 빠지면서 위기에 빠진다. 1979년 영국의 대처수상의 등장(대처리즘), 그리고 1980년 미국의 레이건의 등장(레이거노믹스)은 이러한 선진 자본주의의 축적위기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영국의 대처수상은 1979년부터 무려 11년간 집권하면서 주요 국영기업의 민영화, 사회복지 혜택의 축소 등 국가개입을 축소하는 시장주의 경제정책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대처리즘에 대해 이른바 진보학자들이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신자유주의는 정부개입의 최소화를 추구하는 시장근본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시장개입 배제 혹은 최소화, 즉 경제 자유화와 개방화, 규제완화, 민영화, 재정지출의 삭감과 감세,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주장한다. 그러나 진보학자들이 신자유주의라고 비난한 대처와 레이건 등 보수주의 정권의 경제정책을 보면 시장주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보수주의 정권 하에서 국가의 개입은 실제로 줄지 않았고, 그 내용과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정부지출의 비중은 결코 줄지 않았고, 군사비 지출 등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보수주의 정권에서는 국가의 노동시장 개입, 즉 노조탄압이 강화되고 이른바 법치주의를 앞세워 대중운동을 탄압한다. 거듭되는 경제위기 때마다 정부가 나서서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도산을 막아준다. 경제위기 해결을 위한 국가의 개입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케인즈주의 시대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 빈번하고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시장주의가 아니라 자본본위주의 그것도 초국적 대자본 본위주의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1960년대의 자본주의 황금기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일정한 힘의 균형을 바탕으로 해서 성립하였다고 한다면, 신자유주의는 자본가계급(대자본)의 일방적 우위에 기초하고 있고, 신자유주의는 대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시장경쟁의 강화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강자(대자본)를 위한 이데올로기이고, 공기업의 민영화와 감세의 수혜자는 말할 나위 없이 대자본이다. 반면에 노동자계급과 서민대중은 노동운동의 탄압, 그리고 복지 지출의 축소 등으로 고통을 받는다.

    세계화란 대자본의 경제활동의 무대를 세계로 확장하는 것, 즉 초국적 자본을 위한 이데올로기이다. 세계화란 미명하에 개방과 경쟁주의가사회를 압도하여, 공동체적 가치의 파괴와 시민적 권리의 침해가 정당화되고 있다. 세계화라는 미명 하에 달러화와 영어를 앞세운 미국화가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결국 초국적 자본의 경제활동의 세계화이고, 미국식 문화의 세계화이다.

 

2) 사회경제시스템의 변동: 1극 3중 경제에서 2극 3중 경제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전의 시대에는‘국민경제’의 발전을 중심으로 해서, 그것의 발전을 국제경제와 지역경제가 지원하는 1극 3중 경제의 사회경제시스템으로 파악할 수 있다. 즉 국민경제가 중심에 있고 국제경제(무역을 통한 국제적 자원의 남용·약탈)와 지역경제(자원의 이동과 집약적 이용)가 그것의 발전을 지원하는 구조란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3중 경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민경제만의 일극 3중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경제시스템에서는 지역경제는 국민경제에 종속되면서 쇠퇴할 수밖에 없고, 국민국가는 국민경제의 증대된 경제력을 토대로 해서, 낙후지역에 대한 지역개발정책을 실시하여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전되고, 자본의 활동이 초국적 자본을 중심으로 세계화되면서 국경의 의미가 퇴색하고‘국민경제’의 의미도 퇴색한다. 초국적 자본의 입장에서는 세계경제만이 존재할 뿐 국민경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미 국제경제관계는 국가 간의 경제관계(internationalization)로부터 세계경제로 확대(globalization)되었고, 지역경제는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편되어 대부분은 존립의 위기에 처해 국민경제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초국적 자본이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겪고 있는 경제위기(세계적 장기불황과 금융위기), 자원위기(석유 및 식량위기), 환경위기(기후변화)의 융합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는 세계시장에 통합되면 될수록 불안정성은 증대하고, 지역경제의 흥망성쇠가 초국적 자본의 움직임에 의해 좌우된다. 세계화 특히 금융세계화는 고도의 기업서비스 활동과 정보통신시설이 집중된 이른바 세계도시를 필요로 하고, 세계도시는 세계경제의 지역적 네트워크로 존재하고, 세계경제의 지역적 네트워크에 포함된 일부 지역은 성장하지만, 대다수의 지역은 배제되고 주변화된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도시나 지역 내에서도 진행된다. 특히 세계화는 경쟁력이 약한 산업과 그러한 산업을 기반으로 한 지역의 경제적 기반을 붕괴시킨다. 즉, 농업과 중소기업의 몰락은 농촌과 지방 중소도시의 쇠퇴로 진행된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는 삶의 공간(생산과 재생산)으로서 지역을 위협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경쟁과 시장주의는 노동권의 불안(실업과 비정규직화), 대형 유통자본에 의한 지역 상권의 잠식과 자영업자의 몰락, 농촌경제의 쇠퇴 등 지역경제를 위협한다.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는 주거, 보육, 교육, 보건의료, 환경, 문화 등에서 공공성을 후퇴시키고, 사회서비스의 민영화, 시장화를 통해 지역주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지역환경이 파괴되고, 지역경제가 불안정해지고, 지역에 따라서는 지역의 경제적 기반 그 자체가 붕괴된다. 그렇지만 중앙정부는 재정위기 등을 이유로 더 이상 지역개발을 추진할 수 없게 되고, 신자유주의 분권화를 추진한다. 즉 지역의 문제는 지역 스스로 해결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분권화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의 재정력과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면서 무분별한 기업유치와 각종 개발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난개발로 인한 지역환경의 위기와 지방재정의 위기, 주민의 삶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세계화(세계경제의 통합)는 진전되겠지만, 초국적 자본의 일방적 주도 하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편에서는 경제위기, 자원위기, 환경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초국적 자본의 활동에 일정한 규제를 가하는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가 확립되지않으면 안 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사회의 붕괴, 지역경제의 위기, 지역환경의 위기는 지금까지처럼 지역경제를 국민경제나 세계경제의 종속적 지위에 두어서는 해결방법이 없다. 지역경제의 자립, 순환형 지 역경제의 형성이 무엇보다도 긴요하다. 이런 점에서 사회경제시스템은 세계경제와 지역경제가 각각 독자의 발전을 모색하는 2극을 형성하고 그 가운데서 국민경제는 자본의 일 활동영역으로서의 국내경제로 전환된다. 즉, 2극 3중 경제가 형성되고 있다.

 

지역의 재발견

1) 지역이란?

    지역이란 무엇인가? 첫째, 지역은 자연·경제·문화의 복합체(통합적 존재)이다. 지역은 인간이 서로 협동하여 자연에 작용하고 자연의 일원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장, 생활의 기본권역으로서 인간발달·자기실현·문화의 계승·창조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둘째, 지역은 독자성을 갖는 개성적 존재이다. 지역은 자연, 자원, 경관뿐만 아니라 문화 및 삶의 방식에서 독자성과 개성을 지니고 있다. 지역의 매력은 독자성에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역은 항상 변화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지속과 변화의 균형이 중요하다.

    셋째, 지역은 주민이 주인인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자치단위이다. 따라서 지방분권과 주민참가를 토대로 한 지방자치를 확립하여야 한다.지역의 크기(범위)는 불변은 아니고 생산력의 발전, 교통통신수단의 발달, 주민의 통치역량의 발달 등을 배경으로 확대될 수 있지만, 주민이 공동이해를 갖고, 귀속의식을 느끼며 지역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크기의 단위이어야만 한다.

    넷째, 지역은 개방적 존재이고 지역의 교류와 연대가 필요하다. 지역의 자립과 지역 간 연대를 기초로 한 지역 간 시스템으로서 국토경영이 가능하다.

    다섯째, 지역은 중층적 존재이다. 세계를 하나의 세계 공간이 아니라 지역경영에 기본을 둔 중층적 지역 시스템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기본적 생활권(자연, 경제, 문화의 복합체인 지역)의 경영이 먼저 있고, 지역 간의 종합조정시스템으로서 광역경영·국토경영이 있고, 국제적인 종합조정시스템으로서 국제적 지역경영·지구경영이 있다.

    여섯째, 지역은 전국적, 국제적, 세계적 존재이다. 지역은 국가나 세계와 유기적 관련을 갖는 구성부분이므로 지구차원으로 생각하고 지역차원으로 행동해야 한다(Think Globally, Act Locally). 지역의 재생으로부터 국가사회, 국제사회, 지구사회의 재생을 전망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지역의 재발견: 주체적·자립적·저항적 지역

    첫째, 지역은 주체적 존재이다. 신자유주의적 분권은 중앙정부의 관점에서 지방분권이요, 신개발주의적 지역개발은 자본의 관점에서의 지역개발이라는 점에서 그 한계가 명확하다. 지역을 중앙정부나 자본의 관점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관점에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지역을 중앙정부나 외부자본에 의해서 그 운명이 결정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공동체적 일체감을 갖고 서로 연대하여 삶을 영위하는 공간, 즉 주체적 존재로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역은 자립적 존재이다. 즉, 지역은 인간 생활의 기본거점이다. 인간은 지역에서 생활하고 지역의 자연에 규정되어 지역마다 상이한 생활양식과 문화를 형성하며 지역적인 특색을 지닌 형태로 인간과 자연 간의 물질대사를 행한다. 또한 인간은 태어나서 배우고 놀고 일하고 즐기고 하는 모든 생활과정에서 사회적 협동(연대)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행하고 서로 협동하여 살아가는 생활의 거점, 즉‘인간적 지역’을 형성한다.

    고대 이래 인류의 역사는 지역의 역사였고, 지역은 자립적?주체적 존재이다. 인간의 욕구에 비해 희소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분배하고 소비하고 폐기(자연에 환원)하는 경제과정은 지역을 기본단위로 조직되어 왔고, 지역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필요로 하는 생활물자나 서비스는 지역의 토지, 자원, 에너지나 노동 등 지역적 생산요소의 투입에 의한 지역에서의 경제과정을 통해서 자급적으로 생산되는 것이 기본이다. 지역 특산품을 이출하여 지역에서 부족한 타 지역의 특산품을 이입하는 지역간의 거래관계는 지역에서의 경제과정을 보완하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자본주의 경제발전은 노동력과 토지를 포함한 모든 생산요소를 전면적으로 상품화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보다도 자연의 정복을, 지역적인 생활과 생산의 결합보다도 생산과 소비의 분리를 촉진하고, 지역적인 경제과정 대신 국민경제에서의 자본의 자유로운 영리 활동과 재생산과정을 경제과정의 기본으로 했다.

    국민적 규모의 분업과 교환을 기초로 하는 생산력의 발전은 사람들의 생활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인간의 자유를 확대했다. 경계나 국경의 아무런 제약 없는 경제활동의 자유가 강조되면서 지역이나 지역경제는 실질적으로 의미 없는 존재가 되었다. 경제의 국제화, 세계화가 진전되고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경제의 통합이 진행되면서 지역의 자립성(독자성)은 상실되고, 국민경제와 세계경제의 종속적 일 구성 부분으로 전락하였다. 이처럼 자본주의경제의 발전은 인간적 지역을 파괴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성장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상품소비와 생활양식의 획일화가 다양한 지역적 생활양식을 쇠퇴시키고 삶의 질을 희생해왔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환경의 질이나 생활의 질과 연결된 경제발전이 요구되면서 지역(경제)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더욱이 경기침체와 고용위기가 장기화되면서 기업이나 국민경제, 국제경제뿐만 아니라 지역경제를 경제발전의 단위로 새롭게 다시 보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셋째, 지역은 저항적(대안적) 존재이다. 글로벌 시대라는 변화된 여건 속에서 지역을 국민경제와 세계경제의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 자립적 존재, 즉‘인간적 지역’으로 재구성(복원)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은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중앙집권적 정치경제시스템을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한 지방분권적 정치경제시스템으로 바꾸어가기 위한 저항적(대안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지역은 누구로부터 지배되지 않는 주민 자립의 공간이며 독자적 문화와 역사를 창조해 가는 곳이다. 따라서 지역은 중앙과 자본의 의지에 종속되지 않는 저항의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고, 지역을‘인간적 지역’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은 궁극적으로 사회경제시스템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역을 바꾸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는 근거이다.

 

지역만들기의 비전과 과제

1) 지역만들기의 비전(목표)

    지역만들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만들기, 즉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이를 위해 근대화론에 입각한 성장제일주의를 부정하고, 인간의 기본적 권리의 실현, 기본적 필요의 충족을 목표로 하는 발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발전은 물질생활의 향상뿐 아니라 정신적 각성과 지적 창조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또한 지역만들기는 경제적·사회적·환경적(생태적)으로 통합적인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경제는 인간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기초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 개발이라는 하나의 관심만으로 지역만들기를 추진하는 경우 지역의 발전이 아니라 지역의 파괴나 쇠퇴를 초래할 수 있다. 생태계의 보전과 인간의 전인적 발달을 지향하는 장으로서 지역을 재생하는 것이 지역만들기의 기본목표라 할 수 있다.


2) 지역만들기의 기본원리: 순환과 공생

    지역은 인간이 서로 협동하여 자연과 물질대사를 행하는 생활의 거점이다. 이러한 지역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의 공생, 인간과 자연의 공생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생의 원리는 순환의 원리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첫째, 순환과 공생의 지역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즉, 지역경제의 순환, 생산과 소비의 순환(생산자와 소비자의 공생), 도시와 농촌의 순환(공생)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순환과 공생의 지역사회가 조성되어야 한다. 인간 간의 공생(협동과 연대)과 지역자치가 이에 포함된다. 셋째, 순환과 공생의 생태계를 기본 원리로 한다. 여기에는 생태계의 순환, 지역자원의 순환(리사이클링), 환경재생, 지역자원 순환형 농업이 포함되어야 한다.


3) 지역만들기의 과제

① 자립적 지역경제

    지역의 자립적 발전의 기초는 자립적 지역경제의 확립에 달려있다. 따라서 국민경제, 세계경제로부터 지역경제로 사고를 전환하고, 지역주민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있는 경제, 즉 지역자원의 확보와 지역주민에 의한, 지역주민을 위한 지역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먹을거리와 생산·생활 자재, 서비스, 재화 등의 생산, 유통, 소비 등이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는 지역순환형 경제를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지역자급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은 개방적 존재로서 지역 내 순환과 지역 간 분업에 기초하여 성립한다. 다만, 지역 내 수급을 우선시키고 지역 간 분업(국제·국내 시장 수출입)을 이차적인 것으로 한다는 의미이다. 지역 간의 수평적(대등한) 상호의존관계에 기초한 지역경제의 자립을 추구하며, 여기서는 지역 이외의 수요에 의존하는 이출산업(export industry)과 지역 내 수요에 의존하는 지역시장산업(local service industry)의 연관효과가 중요하다. 가능한 한 지역자원(자연적, 물적, 인적, 문화적, 환경적)을 활용하고 발전의 성과가 최대한 지역 내에 보전되도록 한다. 따라서 외래 자본이나 보조금 등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지역의 주체적 계획에 의해 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한 실천과제로는 농촌지역의 관점에서 로컬푸드, 지역농업 조직화, 재래시장 활성화, 지역특화산업 육성, 지역통화, 도농교류 등이 구체적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② 지역생활공동체(분권과 자치의 지역사회)

    각 지역은 중앙이나 자본에 의한 타율적·지배적 발전을 부정하고,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고 스스로의 가치관과 미래전망에 따라 발전을 도모한다. 각 지역의 발전은 그 자연적·문화적 환경 하에서 지역주민이 지닌 활력을 살리고, 그 경제사회가 지닌 제 자원을 이용하는 형태로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지역의 자립적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참가와 협동, 자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적 지방분권은 주민자치의 실현을 위한 불가결한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뿌리민주주의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실천이 선행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주민발의, 정보공개, 주민 참여 예산, 주민참여조례, 주민소환 등의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또한 분권과 자치를 실현 할 수 있는 주민역량의 강화도 필요하다. 여기에는 주민의 책임의식, 문화수준 향상, 공동학습 등이 포함된다. 구체적 실천과제로는 사회적 서비스(교육, 보건, 개호, 의료, 환경, 문화 등)를 지역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지역주민과 지방정부의 다양한 실천과 활동, 그리고 주민자치 운동과 공동학습 등을 들 수 있다.


③ 생태계의 보전

    녹색혁명은 비료, 농약, 제초제 등 농자재 다투입형 농업, 비닐하우스 등 시설이용형 농업, 중화학적 농업으로 농촌지역의 생태계 교란과 환경 파괴를 가져오고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위협했다. 녹색혁명은 다수확의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을 통해 제3세계의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그 결과는 초국적 기업에 대한 종자 종속, 농자재 종속, 금융 종속, 에너지 종속, 그리고 식량 종속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중앙집권적 개발에서 자연은 항상 개발의 대상일 뿐, 자연과 인간이 형성하는 생명의 순환시스템(생태계)이라는 사실이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즉 중앙집권적 혹은 외래형 개발은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을 무시하고 투입-산출의 효율극대화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지역의 환경파괴와 주민의 빈곤화를 초래했다. 따라서 인간 중심의 환경관에서 생태계 중심의 환경관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실천과제로는 자원의 리사이클링, 환경의 재생, 지역자원 순환형 농업, 물과 에너지, 그리고 퇴비와 사료 같은 유형자원의 지역 내 자급 등을 들 수 있다.


④ 경제사회구조의 변혁

    지역은 주체적 존재이지만, 국민 국가와 세계의 일구성 부분이기 때문에 국민국가와 세계의 치경제시스템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많은 지역문제는 중앙집권적 정치경제시스템과 이른바 세계화의 진전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지역경제의 쇠퇴, 공동화, 생태계 파괴 등)의 대부분은 지역 자체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순환과 공생의 지역만들기와 인간의 전인적 발전을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국가와 초국적 자본에 의한 정치경제시스템을 민주적 정치경제시스템으로 변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중앙집권적 정치경제시스템의 변혁을 위한 원동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행 시스템의 가장 커다란 피해자인 지역, 그리고 지역주민이야말로 변혁의 주체이며, 지역은 저항적(대안적) 주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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