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밥상살림
❚이영이 광명YMCA등대생협 전 총무
‘신토불이’란 말이 90년대만 해도 많이 쓰였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있다. 대신 웰빙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웰빙이란 말이 유행어처럼 되면서 유기농시장은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웬만한 마트에만 가도 유기농코너를 따로 만들어 놓고 있고 두부, 콩나물 같은 일상식품도 유기농콩으로 만들었음을 크게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부에 들어간 유기농콩은 우리 땅에서 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배 타고 건너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생협에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유기농 제품들은 모두 수입산이다.
생협을 하면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있다. 친환경먹거리를 소비하는 일이 나와 나의 가족만이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땅을 살리고 농민을 살리고 그래서 지구환경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친환경먹거리를 먹는다는 것은 땅을 살리고 농민을 살리는 일이 아니다. 지구환경을 살리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배나 비행기를 타고 온 곡식과 과일, 견과류들이 온통 우리 밥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캘리포니아산 오렌지 한 개를 사먹을 때마다 2,590그램의 이산화탄소(제주산 귤은 357그램)를 만들어 내는 결과가 된다. 화석연료를 때서 생산해 내는 비닐하우스의 채소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서 먹는지에 따라서도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생협 초창기에는 바구니공급이 있었다. 농민들이 생산해 낸 생산물을 한 바구니에 담아 보내면 그걸 여러 이웃들이 나누어 먹었다. 열무를 단으로 묶어서 보내는 것이 아니고 바구니에 담아 보내는 식이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 기억 속에서조차 가물거리고 있을 때, 팔당 농민들 중에 제철채소를 생산해서 꾸러미를 만들어 공급한다는 이야기를 두레생협연합회 김기섭 상무님으로부터 듣고 그분들을 만났다. 노국환 생산자님의 밭에서 미나리와 들꽃을 따서 비빔밥을 해 먹었던 첫 만남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떤 때는 양배추가 매주 공급되기도 하고, 작년에는 고추종류만 네다섯 가지 오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다양한 요리법과 저장법을 개발하면서 지혜를 모아 왔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채소가 와서 우왕좌왕 하기도 했고 토란요리를 해 본적이 없는 젊은 주부들이 토란을 마을에 돌리는 바람에 토란 한 봉지가 대여섯 집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제 제철채소꾸러미를 공급받은 지 4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먹었던 채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채소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제철채소꾸러미가 주는 일상의 행복이다. 또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밭을 일구거나 채소를 수확하거나 수확이 끝난 밭 정리 등 농사일을 거드는 것도 한결 쉬웠다.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으니 비가 안 오면 가뭄을 걱정하고 비가 오면 오늘은 이 비가 농사에 어떨지를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이번에 4대강 개발로 제철채소꾸러미 생산지가 들어가다 보니 그 절실함을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다.
내가 오늘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이토록 정치적인 의미를 띠고 있음을 소비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요즘 제철채소꾸러미와 같은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천의 콩세알직거래나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에서도 꾸러미 공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근지역에서 생산한 유기농먹거리를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은 이 시대에 가장 적극적인 실천운동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나의 건강한 생명력을 만들어 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
* 이 글은 지역재단 소식지 '지역리더' 14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