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시대에 대응한 농정거버넌스의 의의와 역할
<제3의 정책수단으로서 리더십과 거버넌스>
전통적인 측면에서 보면 정책의 집행수단은 크게 ‘제도와 자금’으로 이루어진다. ‘제도’는 정책의 방향과 절차를 말하며 ‘자금’은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기 위한 현실적 수단이다. 그러나 지자제의 실시를 계기로 지역의 발언권이 확대되고 지역의 특성이 강조되면서 최근에는 제3의 정책수단으로써 ‘지역주민에 대한 리더십’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농촌지역개발정책의 추진방식이 ‘주민주도의 상향식’으로 바뀌면서 이러한 요구는 더욱 증대되고 있다. 지역주민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고 또 그 집행과정에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서 ‘리더십’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농업․농촌)정책이나 자금배분방식이 지역의 자주성과 역량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정책에 대한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의 주체적인 대응능력과 역량이 지역발전의 핵심요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시대적 변화를 직시하고 지역의 약점과 강점을 냉철히 분석하여 지역자원의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조직화방안을 강구해 나가면서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지역구성원간의 협의시스템으로서 ‘거버넌스’가 주목받고 있다.
거버넌스(governance)란 민관협치(協治)조직을 의미하는데, 이는 1970년대 말 공공지출의 증가와 조세수입원의 한계에 직면한 서구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대신 그 역할의 일부를 민간에 이양하면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였고, 이후 신자유주의 확산과 이에 대응한 지방화․분권화의 진전에 따라 중앙정부의 통치권과 조정권이 축소되고 자본 및 시장의 역할과 시민사회의 활동영역을 확대시키는 거버넌스로 발전하였으며, 시민사회의 성장과 정보화의 진전 등으로 국가권력을 기반으로 한 통치기능과 역할이 축소되고 시민사회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지역발전의 구체적인 주체로 자리 잡게 되었다.
<농정거버넌스의 의의와 그동안의 논의과정>
지역농정 혹은 지역활성화라는 측면에서 거버넌스의 의의를 살펴보면 첫째, 세계화에 대응전략으로서 ‘지방화’된 농정시스템의 확립이다. 세계화는 단일한 세계표준(global standard)의 요구,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보장, 국가 간 혹은 지역 간 자유로운 경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에 미달하는 국가 혹은 (산업)부문과는 이해관계가 상반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지방화는 외부와의 경쟁과 동시에 내부적인 협력을 불가피한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구성원간의 의견조정과 합의시스템이 필요하다. 따라서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역적인 대응,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종합적으로 활용하고 그 잠재력을 최대화하는 ‘지방화’의 전략이 필요하며, 그러한 의미에서 ‘농정거버넌스’는 농정부문의 ‘지방화’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중앙정부의 농정추진방식에 대한 지역적 대응이다. 중앙정부의 (농업․농촌)정책이나 자금배분방식 특히, 참여정부 이후 각종 농정추진은 지역의 자주성과 역량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농업)자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구성원간의 내적조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독자적이고 개성있는 지역(농업)발전계획을 수립해 중앙정부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데, ‘농정거버넌스’는 이러한 지역적 대응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지방분권과 자치의 확산에 대응한 농정추진기구이다. ‘분권과 자치’라는 시대적 흐름을 직시하고 지역의 약점과 강점을 냉철히 분석하여 지역농업자원의 종합적인 조직화방안을 강구해나가면서 지역구성원들의 다양한 욕구를 효율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지역구성원간의 협의시스템이 필요하며, ‘농정거버넌스’는 지역 구성원간 농정협의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농정거버넌스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제기는 1998년 2월, ‘범농업인 21C농업개혁위원회’의「농업회의소」설립 주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 2004년과 2006년에는 ‘농어업․농어촌발전특별위원회(농특위)’에서 농정거버넌스 구축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한 바 있고,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의 대선공약으로「농업회의소」에 관한 언급에 이어서 2009년에는 ‘농어업선진화위원회’가 거버넌스분과를 운영하면서 ‘농정협의체’에 관해 논의한 바 있으며, 2010년 농식품부 업무보고에서「농업회의소」항목을 포함하는 등 정부차원에서 중앙단위의 농정거버넌스로서「농업회의소」설립논의가 구체화되어 왔다.
과거「농업회의소」설립 논의가 구체적인 결실을 거두지 못한 채 무산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설립논의 자체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째, 이해당사자 다수가 참여하는 토론과 합의형성과정 없이 중앙주도의 하향식으로 진행된 논의방식으로 인해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고 둘째, 지역현장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채우지 못한 채 중앙단위 중심으로 법제화에만 집중함으로써 그러한 노력 자체가 농업계 내부로부터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셋째, 거버넌스로서「농업회의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그것을 설치하기 위한 지역단위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중앙단위 주도의 논의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대안제시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중앙주도의 제도화에만 몰두하던 과거의 방식을 버리고 지역 현장으로부터 분출되고 있는 요구와 동력을 바탕으로 한 지역단위의 농정거버넌스 구축에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된다.
<농정거버넌스의 구축과 성공조건>
지역단위에 ‘농정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련조례나 규칙의 제정 등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하며, 동시에 재정적인 안정성 확보와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농정거버넌스’가 기존 농정조직과 조화를 이루면서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업무분장이 명확해야 하는데 농정거버넌스는 첫째, 기존조직으로서는 원활한 업무수행이 불가능한 새로운 업무(지역농업계획의 수립, 농업인 역량강화와 조직화 등) 둘째, 기존업무라고 하더라도 여건이 변화하여 기존조직의 업무를 재분장할 필요가 있는 업무(농산물마케팅 등) 셋째, 기존업무와 보완 혹은 연계가 필요한 분야의 업무와 충돌하지 않는 분야(도농교류, 환경농업) 넷째, 지역농업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대외협력 관련 업무(외부조직이나 전문가와의 네트워킹, 새로운 정채유치업무) 다섯째, 새로운 농정개발 등을 중심으로 한 업무분담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농정거버넌스’가 재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체장의 협조, 관료집단과의 조화, 시스템의 보완, 전문가집단과의 연대, 지역 내 전문가 육성, 중앙농정과의 연계 및 협조, 평가시스템의 보완, 주민의 인식개선 등이 필요하다. '농정거버넌스'는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면서 지역농업과 농촌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시도 즉, 이제까지와 같은 농정 협의 및 추진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역(농업)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성과 자각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반성과 자각이 얼마나 철저하고 진지한가에 따라 또, 지역의 구체적 여건에 따라 '농정거버넌스'의 설치방법이나 업무내용, 설치규모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는 지역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도 나올 것이다. 결국, '농정거버넌스'의 성패는 지역적 사정에 따라 좌우될 것이기 때문에 지역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조직으로서 '농정거버넌스'의 성공을 위한 지역적 노력이 요구된다.
< 글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