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지역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주변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이 듣는 말이 ‘지역’이다. 지역이라 해도, 그 의미나 공간적 범위가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지역 가꾸기, 지역 만들기, 지역혁신, 지역 활성화, 지역 리더, 지역 재단, 마을 가꾸기, 마을 만들기, 마을 공동체 등등. 이처럼 지역이 주목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으로 오늘날 우리의 지역이 수도권, 대도시, 지방소도시, 농촌 지역을 가릴 것 없이 위기에 처해 있고, 그 상황이 점차 더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위기의 심각성이나 성격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의 쇠퇴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그 도를 넘어선 것 같다.

우리나라의 농촌 인구(읍면 인구)는 1970년 1,850만 명(전체 인구의 58.8%)에서 2005년 876만명(18.1%)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고,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중은 같은 기간에 4.2%에서 18.1%로 증대하였다. 이 통계는 농촌인구가 급격하게 줄면서 고령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나 평균적 통계는 진실의 일부만 이야기할 뿐이다. 농촌형 중소도시 나주시의 예를 보자. 나주시의 인구는 1970년 227,261명에서 2005년에는 98,770명으로 57%나 감소하였고 지금도 매년 천명 이상 씩 인구가 줄고 있다. 세대 당 인구는 같은 기간에 5.6명에서 2.3명으로 줄었다. 자식들은 모두 떠나고 홀로 사는 노인 또는 노인부부 2인 가족이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다. 2007년 현재 나주시의 고령인구 비율은 평균 21%이지만, 시 지역(동)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읍면지역은 인구의 3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들이다. 자연부락 단위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60세 넘은 청년(?)이 마을의 가장 젊은이인 마을이 적지 않다. 태어나는 아이는 없고, 돌아가시는 노인들만 계시니, 머지않아 문을 닫아야 할 ‘자연 양로원’이 적지 않다. 명색이 시 지역의 형편이 이러하니 군 지역의 사정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지역의 위기가 심각한 만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지난 참여정부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국정 과제로 삼고, 행정수도 건설, 기업도시, 혁신도시, 낙후지역개발, 지역특화 특구 정책 등 수 많은 지역균형정책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현 MB 정부는 지난 정부의 균형정책은 내국적 균형 정책이라 비판하고, 세계화에 대응하는 경쟁력 있는 지역창조를 목표로 하여 전국토의 성장 잠재력 극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국을 기초생활권, 광역생활권, 초광역 생활권으로 나누어 개발하고자 한다. 마을 단위에서도 각종 개발 사업이 진행되어 왔고 지금도 추진되고 있다. 나주시의 예를 들어보면, 2009년 현재 농촌마을 가꾸기와 관련해서 정보화 마을, 농촌마을 종합개발 사업 등 9 종류의 정부 사업에 17개 마을(권역)이 각각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각종 개발 사업들이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의 쇠퇴를 막고 ‘살기 좋은 마을(지역)’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도 수많은 농촌개발 정책이 있어왔지만, 농촌지역의 쇠퇴를 막지 못하였고, 농촌은 급속히 쇠퇴하여 왔듯이, 정부의 각종 개발 사업에 대한 농촌주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농촌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다, 그래서 모두 떠나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 않다, 한 마디로 농촌의 미래는 절망이다”라는 최근 어느 토론회에서 만난 농민의 절규처럼 많은 농촌주민들은 절망에 빠져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지자체 가운데 상당히 모범적으로 농촌지역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한 어느 지자체의 장이 간절한 표정으로 필자에게 “우리 농촌에 정말 살 길이 있는 것입니까, 방법이 없어요”라고 고백할 때 나 또한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정부의 농촌개발 사업과 그 성과에 대해서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사업 가운데 참으로 성공하는 사례는 매우 적고, 지역(마을)에 따라서는 정부 지원금으로 인해 오히려 자력으로 잘 해오던 기존 사업을 망치고 심지어는 지역(마을)이 걷잡을 수 없는 갈등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주민들이 사업을 주체적으로 수행할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지만, 거의 모든 사업이 하드웨어 중심의 단기적 소득 증대라는 경제적 과시적 성과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당분간 농촌지역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 또한 농촌의 미래에 대해 절망적이다. 농촌 쇠퇴의 원인이 도시와의 격차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격차를 단기간에 메울 방법이 없다. 도시에는 있는데 농촌에는 없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그 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매진하여 왔다. 그러는 속에 알게 모르게 경제적 효율주의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여 왔고,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라는 물질 황금만능주의가 우리의 가치를 왜곡해왔다. 경제적 효율주의와 황금만능주의로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나약하고 어리석은 개개인의 삶이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보자. 2001년 초 이와테 현의 마스다 히로야 지사는 ‘분발하지 않기 선언’을 하였다. “경제적 이익에 편중하고, 그것을 화폐로 환산하여 가치를 따지고, 효율성만을 추구해 온 덕분에 일본은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반면, 자연을 파괴하고 귀중한 지구자원을 낭비하고 지역의 자립을 해쳐왔다. 20세기적인 개발, 대규모, 집중과 같은 가치관을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이와테 현은 ‘시간, 여유, 안정, 자연환경’ 등 이제까지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들을 제대로 평가하는 일부터 시작하겠다.” “이는 척도를 바꾸는 일이다. 이제까지 ‘뒤처져있다’고 일컬어져온 도후쿠 지방은 새로운 척도로 말하면 ‘일본이 지닌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땅’으로 변신할 것이다. ‘분발하지 않기’란 이제까지와 같이 도쿄나 뉴욕 등의 척도에 비추어서 ‘없는 것’을 애석해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다른 지역과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재발견함으로써 각각의 지역에 맞는 개성과 특성, 각자의 페이스에 맞춘 발전의 길을 열어가겠다는 것이다.”
농촌에는 한편에서는 노령화의 진전과 도시와의 경제적 격차의 확대로 활력을 잃고 인구가 감소하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오히려 농촌이 도시에 비해 지니는 우위성(여유, 환경과 경관, 안락함과 고요함, 안전과 안심, 전통과 공동체성 등 비물질적 가치)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활기 있는’ 농촌주민은 꾸준히 증가할 것이고, 농촌적 삶의 양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귀농(귀촌)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농촌인구의 절대 수가 아니라 ‘활기 있는’ 농촌주민의 수가 얼마나 될 것인가가 우리 농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두려운 것은 인구의 과소가 아니라 마음의 과소이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농촌을 그 곳에 살고자 하는 사람 그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농촌마을 만들기는 단순한 소득증대 사업이 아니라, 주민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고, 지역의 개성을 살리면서 경제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환경적으로 통합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농촌지역에서 훌륭한 지역 리더들에 의해서 진정한 농촌마을 만들기 혹은 지역 가꾸기가 추진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 사업에 의존한 것도 있지만, 순수한 민간 차원의 힘으로 추진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이른바 성공사례라고 하는 것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적지 않다. 악전고투란 말처럼 지역리더의 현실을 잘 표현하는 말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러한 지역리더의 헌신과 땀 속에서 우리 농촌의 희망을 본다. 내가 길을 떠나 1년여에 걸쳐 전국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삶의 현장을 찾은 이유이다. 나는 앞으로 연재될 글을 통해서 우리 농촌지역이 처해 있는 현실과 그 원인을 진단하고, 희망을 일구기 위해 땀 흘리는 지역리더의 성공과 실패, 웃음과 눈물을 통해 우리 농촌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