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VS 지보면, 누가 우리 농업의 모델일까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뉴질랜드가 떴다. 지난 3월3일 이명박 대통령이 뉴질랜드에 방문하면서, 뉴질랜드를 우리나라 농업개혁의 선진 모델로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서둘러 농어업선진화위원회를 설립하여 농업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인 지난 1월29일 농식품부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보고한 ‘농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에서는 네덜란드 농업이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하여야 할 선진 모델이었다. 네덜란드건 뉴질랜드건 우리가 배울 바가 있으면 배우면 된다. 따라서 그걸 가지고 시비 걸 이유는 없다. 한편 MB 정부 농정에서는 각종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전략부터 칭기즈 칸, 강감찬, 연개소문까지 역사적 인물들이 우리농업의 구세주로 등장한다. 훌륭하신 분들의 정신을 이어받거나 심지어 연개소문 전략처럼 이름만 차용해서라도 우리 농업이 살길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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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질랜드 농업이 우리나라의 모델이 될 수 없는 이유

뉴질랜드가 뜨자 농업계가 크게 반발하였다. 뉴질랜드 농업과 농업개혁은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뉴질랜드가 어떤 나라인가. 인구는 400만 명밖에 되지 않은 반면에 국토면적은 우리나라의 2.7배, 농경지면적은 8.2배에 달하는 나라이다. 농가수 6만3천호, 농림업취업자수 8만3천명으로, 우리나라의 123만호와 167만 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농가호당 경지면적은 233ha로 우리나라의 1.5ha의 155배에 달한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나라가 논 논사 중심의 경종농업이 중심이라면 뉴질랜드는 넓은 초지를 이용한 축산업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질랜드는 농업생산물의 90%를 수출하고 있으며, 농산물 수출액은 전체 수출액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 손꼽히는 농산물 수입국이며, 농산물 수출액은 전체 수출의 0.7%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몇 가지 사실을 대비해보면 뉴질랜드 농업이 우리 농업의 모델이 될 수 없음은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농업보조금의 폐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뉴질랜드의 농업개혁이란 것도 그 내실을 들여다보면, 정부가 잘못 개입해서 멀쩡한 뉴질랜드 농업을 망쳤다가 정부가 제 정신을 차려 제자리에 되돌려 놓은 것에 불과하다. 엉터리 의사가 건강한 사람에게 영양을 과잉 공급하여 비만으로 만들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고생시키다가 강제로 다이어트를 시켜 정상으로 만든 거나 마찬가지다. 원래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뉴질랜드 농업이 정부의 잘못으로 잠시 경쟁력을 잃었다가 다시 회복한 것이다. 어떻게 보더라도 뉴질랜드 농업이나 농업개혁이 우리나라의 모델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설마 이명박 대통령이나 농정당국자가 이를 몰라서 뉴질랜드 얘기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뉴질랜드처럼 우리나라도 농업보조금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설마 정부가 그렇게 정신을 놓을 리가 없을 것이다. 다만, 정부가 개입을 해서 농업부문을 지원하더라도 효율적으로 잘 하라는 정도의 독려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기업과 자본만을 위한 MB농정에는 농민이 없다!

문제의 본질은 MB 정부가 네덜란드나 뉴질랜드 모델, 이순신이나, 칭기즈 칸, 연개소문 전략 등을 통해 우리 농업을 어디로 끌고 가려고 하는가 하는 것이다. MB 정부의 농업비전은 우리나라 농업을 세계와 경쟁하는 강한 농업, 수출농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2년까지 20만의 기업적 주업농과 1만 개의 법인형 경영체를 육성하려고 한다. 우리 농업의 담당 주체로서 전업농 혹은 주업농을 육성하겠다는 것은 새로운 정책은 아니다. 이미 1967년의 농업기본법의 자립 가족농 육성부터 시작하여 문민정부의 전업농, 참여정부의 정예농업인력 육성 등에 뿌리를 두고 있고, 다만 MB 정부는 ‘기업적’이라는 당의정을 입혔을 뿐이다. 그러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 농업의 미래에 대해서 기업농이냐, 가족농이냐 하는 논쟁은 60년대 이래의 해묵은 논쟁이고 그 동안 역대 정부가 이 양자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면, MB 정부는 기업농에 우리 농업의 미래를 걸고 있다. 뉴질랜드, 네덜란드, 이순신, 연개소문 등 수사가 현란하지만 이런 것들은 결국 기업농 육성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MB 정부는 농민도 기업농이 되어야 하고, 농민들에게는 미래 첨단산업(농업)을 맡길 수 없기 때문에 농업분야 진입규제를 완화해서 대기업과 외국자본을 적극 유치하겠다고 한다. 그렇다. 기업과 자본을 위한 농정, 이 점이야 말로 MB 농정의 백미이다. 한식의 세계화, 농산물 수출 100억 달러 등 모든 것이 기업과 자본을 위한 것이다. MB 농정의 기조에는 농민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기업농 혹은 농기업가, 대기업과 외국자본이 우리 농업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소수의 잘나가는 기업농이나 농기업, 더욱이 외국자본으로는 우리 국민의 먹을거리 기본권(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소비할 권리)을 보장할 수 없고, 더욱이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식량안보, 환경 및 국토자원의 보전 및 관리, 지역사회의 유지, 역사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 인간 교육의 장 등)은 도저히 발휘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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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농업 조직화의 성공사례, 지보참우작목반

나는 오래전부터 정부의 ‘소수 엘리트 농민을 위한 농정’에 반대하고, 지역농업의 조직화를 주장해왔다. 지역농업의 조직화란 지역의 농업자원(토지, 노동력, 자본)을 지역 전체의 관점에서 효율적으로 결합하여 지역 전체의 소득증대와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산물의 생산, 가공, 유통, 소비의 총체적 체계로서의 지역농업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이러한 지역농업조직화를 위한 농민들의 노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경북 예천군 지보면의 지보참우작목반의 실천 사례를 본다. 지보참우작목반은 2001년 5농가가 공동 우사(대지 2000평, 건물 800평)를 건립하여 한우를 공동 사육하면서 시작되었고, 지금은 작목반원 21명이 협동하여 지보참우마을 정육점 및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2006년 12월 지보 본점을 개업하여 영업한 지 한 달만에 예천군에서 판매 1등을 했다. 당시 축협에서는 한우 12두를 잡았는데, 지보한우작목반은 16두를 잡았다. 지보한우작목반은 다음달 24두, 30두, 40두로 증가하여 현재는 월 100두를 판매하고 있다. 단위 매장만으로는 판매량이 전국 1위다. 정부에서 5억원, 축협에서 5원억 총 10억원을 투자해서 세운 횡성한우플라자가 월 40~45두 정도 밖에 판매하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 더욱이 정부가 100억원 이상 투자하여 설립한 경북 한우클러스터의 판매량이 지보참우작목반에 미치지 못한다.

지보참우작목반의 놀라운 성과는 지역농업의 조직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들의 노력을 생산의 조직화, 유통 및 소비의 조직화로 나누어서 살펴보자. 최병용 작목반장의 말을 통해 생산의 조직화 과정을 들어보자.

“소 사료의 90% 이상을 수입 사료로 쓰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수입육과 한우의 차별성을 못 느낀다고 생각하고. 우리 조상들이 5,000년 동안 키운 방법으로 한번 해보자 생각하여 농촌진흥청에 한우 키우는 사업을 공모했었다. 제목이 ‘버려진 농산물 가공부산물을 이용한 한우 사육’이었는데 당첨이 되었다. 당시 연구비로 7,400만원을 받았는데, 94년 당시 금액으로 서울 아파트 한 채 가격이었다. 대학교수 2명과 함께 붙어 2년 동안 연구를 했는데, 대성공이었다. 쌀 도정에서 나오는 쌀겨와 벼 부산물, 두부비지, 깻묵, 한주농산이라고 주스 공장에서 나오는 당근 찌꺼기 등을 계산해 보니까 예천 소 1만두 사육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당시 예천소가 2만두였으니까 절반을 사육할 수 있는 양이었다. 이전에 30두 정도를 이 방식으로 사육하고 있었는데, 부산물을 그대로 주었을 때는 소가 소화시키지 못했었는데 부산물을 발효시켜서 주니까 소화를 잘 했다. 그래서 발효 시켜서 먹이게 됐다. 당시 교수와 학생들이 매일 붙어서 연구하고 지켜보았는데, 이 결과물로 인해 상도 받고 자신감도 얻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교육도 시키고, 1997년 IMF가 터지자 사료 값이 폭등하고 소 값이 폭락했는데, 우리는 사료 값이 들지 않았다. 그때 소를 많이 늘렸다. 우리는 사료를 직접 만드니까 나도 돈을 벌었고, 우리 지역 사람들도 돈을 벌었다. 당시 이러한 사육방식을 가지고 ‘참우’라는 브랜드를 내가 만들었는데, 현재는 예천군수가 군에서 키운 소를 ‘예천 참우’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어 내용이 변질 됐다. 경기가 좋아지고 사료 값이 떨어지자 이러한 방식이 귀찮다고 느낀 농가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다. 2004년 발효 미생물 제재를 만들어서 ‘첨가제’를 생산하는 생균제 작목반을 만들었다. 이전에 내가 직접 생균제를 만들어 장사(?)를 했었는데, 예천군 전체에서 한번 해보자 하여 123명이 200만원씩 출자, 2억 4천 6백만 원을 걷어, 땅도 사고, 건물도 짓고, 공장을 설립하여 공급하고 있다. 작년까지 작목반장을 하다가 올해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다. 상근인원이 5~6명 정도 되는데, 배달까지 하고 있다. 방식은 전체 폐기물을 사용하지 않고 발효가 잘되는 몇 가지만 사용하고 있다.”


농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공동우사와 농기계공동이용

생균제의 공동 공급 이외에 지보한우작목반은 공동 우사를 운영하고 있다. 다시 최병용 반장의 말을 들어보자.

“2001년도에 5농가가 모여 설립했다. 시골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소를 먹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사를 짓고, 시설을 하다 보면 빚을 지게 되기 때문에 잘 안하려고 한다. 2001년도에 공동으로 3억 원을 들여 우사를 지었다. 2000년 초반에 우사 지원금이 있어 지원을 받았다. 3억 원 중 20% 자부담(6천만원), 40% 보조(1억2천만원), 40% 융자(1억2천만원)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 자금을 지원받아 대부분 사유화 했는데, 우리는 지역을 위해서 써자고 하여 개인 돈을 넣지 않고 농협에서 후취담보로 대출을 받아 1억 8천만 원을 투자하였다. 건물을 지어서 임대용 우사로 이용하고 있다. 부지가 2,000평이고, 건물이 800평인데, 200두를 사육하였다. 우사는 공동으로 지어 놓고, 5명이 임대식으로 소를 키웠는데, 칸별로 임대료를 받아 융자금을 갚아 나가고 일부는 장비 충당금으로 사용하였다. 초기 투자가 들어가지 않으니까 빨리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하다가 개인우사를 지어 독립하여 공간이 남으면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사육을 하였는데, 기술이 없어도 같이 키우니까 기술 등 여러 가지를 공유하는 이점이 있어 성공적이었다. 개인에게 우사를 지원하지 말고 농협이나 축협에 자금을 줘 임대형 우사를 지어 필요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DJ 정부 때 관련기관에 제안했었는데 안됐다. 일부 사람들 중에는 임대료가 비싸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지보에서 축산을 하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30두 정도인데, 나는 170두를 사육하고 있다. 사실 30두를 키우나 170두를 키우나 노동력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고정자산에 들어가는 돈이 커서 규모화를 하기가 어렵고, 전망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규모화를 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작목반에서 800평 규모로 공동우사를 하나 더 지어 400두 정도 사육하고 있다.”

공동우사 이외에 농기계공동이용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그 동기는 농기계가 농가부채의 주된 원인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다시 최병용 반장의 말을 들어보자. “지보농민회 차원에서 농가부채를 조사해보았는데, 트랙터, 이앙기 등 농기계비용으로 7,500만 원이나 됐다. 5년 쓰면 수명이 끝인데, 1년에 1,500만 원 감가상각이 된다. 1마지기당 기계 값으로 30만 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노인들이 빚이 없는 이유는 기계를 사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10마지기를 짓는데 9만 원 정도면 임대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기계 사서 망하고, 기계 안 사려면 노인들처럼 소규모로 농사지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전업농 육성해서 다 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고자 농민회 차원에서 협업에 대한 논의를 하여 기계공동이용조직을 만들었다. 처음 농민회 회원들끼리 트랙터 있는 사람은 로타리치고, 이앙기 있는 사람은 모내고, 기계가 없는 사람은 모판 나르고. 이렇게 역할 분담을 하니 인력이 남았다. 그래서 우리끼리 하지 말고 남는 잉여 노동력을 가지고 노인네들 기계 일을 해주자 해서 ‘효도 못자리 사업’을 하게 되었다. 어른들한테 돈 받은 것을 가지고 농민회 경비로 사용했다. 사무실 비용과 제반경비가 1년에 천만 원 정도 소요됐는데, 이것으로 다 해결했다. 협업을 통해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보았다.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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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단계 축소로 소비자들에게 양질의 한우 제공

지보 참우작목반이 지금까지 살펴 본 생산의 조직화(공동사육, 생균제 공동 공급, 농기계공동 이용조직 등에 머물지 않고, 유통 및 소비의 조직화(정육점 및 식당 운영)로 나아간 과정에 대해 작목반장 최병용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2006년 한미FTA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전국한우협회 경북협회 지보면지회 회원 21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당시 수입개방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가운데, 상경집회도 하고, 데모도 하고, 물리적 투쟁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 2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는데, 둔갑판매와 유통단계를 축소하여 싸게 공급하자는 것이었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소비자들은 품질이 좋은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거세고급육만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한우가 비싼 이유는 유통단계 때문인데, 농가는 한우 한 마리에 600만원에 판매하지만 백화점에서는 1,800만 원, 식당에서는 2,200만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유통과정의 거품을 빼고자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 21명이 소 한 마리 값을 내서 총 5,200만원을 출자하였는데, 땅 150평을 2,500만 원에 구입해서 작업하니 3,000만 원 정도 들어갔고, 건물 뼈대 세우는 데 나머지 돈을 다 사용했다. 담보 대출을 받아 나머지 공사를 마무리 했다. 건물 세우는 데 5,000만 원, 인테리어 하는 데 4,000만 원해서 총 1억 2천만 원이 투자 되었다. 2006년 12월 28일 오픈을 했는데, 회원들 소를 안정적으로 파는 데 목표를 두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곳은 외진 곳이라 도시라고 해 봐야 안동, 구미, 대구 등이 있는데, 거리가 멀고, 연결도로가 없다. 그리고 관광지도 없고, 외지인들이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과 차별을 시키자, 장사를 하면 안 된다. 원가에 팔자’라는 원칙을 가지고 시작했다.

소 700kg 기준으로 도축, 운임 등 모두 포함해서 대략 630만 원 정도 드는데, 지육으로 계산하면 60%, 420kg이 나온다. 여기에 두당 인건비가 30만원을 포함하면 660만원이 원가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700만원에 팔자, 총 350근 고기가 나오는데, 근당 1,000원만 부치자, 600만 원짜리 소를 700만 원에 팔면 소비자가 충분히 사갈 수 있다는 전략이었다.

여기에 추가로 먹는 비용이 들어가는데, 1근을 먹는 데 4명 기준으로 채소 등 비용이 4,000원, 인건비 2,000원해서 원가가 6,000원 들어가는데, 식당운영비 2000원을 포함해서 8,000원을 받기로 했다. 가격은 600g 불고기 10,000원, 구이용 16,000원, 등심안심 27,000원, 갈비살 40,000원이다. 시중에서는 등심, 안심이 45,000원에서 50,000원에 판매된다. 일반 식당에서는 150g 1인분에 20,000원인데 4인분이면 80,000원이다. 우리는 40,000원 정도에 판매한다. 즉 시중의 절반 가격에 판매하는 셈이다. 복잡한 유통구조가 소비자들이 한우를 먹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이것만 극복하면 한우 소비가 높아질 수 있다. 국민의 70%가 한우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유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지보참우작목반은 정육점 및 식당의 직영을 통해 사육한 한우를 안정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작목반에서 도축하는 소가 월 100두 정도인데, 참우작목반 소가 월 20두, 작목반 외 지보면 소가 월 10두이고 나머지는 예천군 소를 도축한다. 예천군 전체에서 월 200두 정도의 거세 수소를 도축하니까 작목반이 그 절반을 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지보참우작목반과 유사한 형태로 사업을 하는 소사육 작목반이 예천군에 많이 늘어서 지보참우작목반이 도축하는 소는 70-80두 정도로 줄었다. 그렇지만 작목반 자체 소는 20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작목반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


지역과 농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 지역농업 조직화

지보참우작목반의 성과는 작목반 내부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사회와 함께 하고 있다. 우선 지역사회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지보면 전체 인구가 3600명인데 , 손님이 일주일에 3600명이 온다. 지보면에 직영매장 1개를 포함해, 지정매장 4개, 유사 개인매장 4개 등 총 9개의 한우 매장이 생겼다. 직영매장 직원 20명 등 지역의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월 4000만원 정도의 수익금이 생기는데, 반원들에게 출자금 배당을 하지 않고 수익금 전체를 한우 축제, 장애인 시설 지원, 경로 행사 등 지보면을 위해 사용한다.

지보참우작목반의 성공은 농기업 혹은 기업농이 아니라 가족농의 조직화가 우리 농업의 활로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최병용 반장은 참우작목반의 정육점과 식당이 잘 되는 이유에 대해서 “개인 장사가 아니라 농민회 면 지회에서 공동으로 운영해서 그런 것 같다”며 “사실 모여 있으면 겁나지 않는다. 조직화로 한미 FTA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나라 한우 농가의 조직화 정도가 미약하기 때문에 한미 FTA에 적극 반대한다”는 최 반장의 말에서 조직화의 중요성과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성공 사례에나 반드시 그 뒤에는 훌륭한 리더가 있다. 지보참우작목반의 최 반장은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83학번이다. 90년도에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축산을 시작하였다. 그는 전공을 살려 가공 부산물을 이용한 한우 사육, 생균제를 만들어 농가에 공급하는 등 주변의 신뢰를 획득하였다. 그는 전국농민회 총연맹 예천군 지보면지회 회장을 맡으면서 동시에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 반장은 2006년 한미 FTA를 전후하여 상경집회 등 물리적 투쟁에 열심히 참가하였지만 한계를 느끼고, 지보면 한우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한우의 공동 사육, 정육점과 매장의 직영 등 지역농업의 조직화에 힘쓰고 있다. 그는 몇 가지 점에서 분명한 철학을 지닌 리더이다. 최 반장은 전체 국민의 70%가 한우를 먹고 사랑해야 한우를 진정으로 한우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서민이 한우를 먹을 수 있는 한우 생산 및 공급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리고 그가 정육점 및 식당을 운영하는 이유는 정육점과 식당을 통해서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우의 안정적 사육과 판매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정육점과 식당의 마진은 가능한 한 최소화하려고 한다. 지보참우작목반을 흉내 내어 시군별로 매장도 짓고, 작목반도 구성하고 식당도 들어섰지만 대부분 실패한 이유는 정육점 및 식당에서 마진을 남기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최 반장의 설명이다. “모여 있으면 겁나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조직화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최 반장은 조직의 공동 이익과 사적 이해가 일치해야 조직이 지속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는 “주변사람들은 내가 지역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지만 작목반을 통해 가장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본인이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한우를 170두 사육하고, 논농사 1만평을 짓고 있는데, 이런 농사가 지역농업의 조직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평소에도 공동 사육하고 공동 관리하지만, 자신이 서울 상경 집회 등에 참석하느라 우사를 비우면 동료들이 대신 소를 관리해준다. 그때 동료들의 말이 재미나다. “최 반장이 우리들의 한우를 지키기 위해 서울에 데모를 하러 가니 최 반장 한우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최 반장은 시설 투자는 최소화하는 것이 좋고, 따라서 정부의 지원도 최소화하여 안정적 자립적 경영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지원으로 규모화, 시설화를 지향하는 경쟁력 지상주의와는 사뭇 생각이 다르다.

지보참우작목반에서는 휴일 식당 앞에서 2시간씩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소달구지를 태워주는데 인기가 좋은 점에 착안하여, 앞으로 한우 체험마을을 조성하여 먹을거리, 놀거리, 볼거리를 결합할 예정이다. 지보참우작목반이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해갈지는 우리 모두의 흥밋거리이다. 한우 농가 조직화에 머물지 않고 경종을 포함한 지역농업 전체의 조직화(예, 지역순환형 농업)로 발전한다면 참으로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보참우작목반이 지금 지역사회를 위해서 하고 있는 각종 봉사를 발전시켜 지보면을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경제적, 사회문화적, 환경적으로 통합적인 발전을 추구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