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푸른들영농조합 사람들의 꿈
아산시 친환경 지역농업의 중추적 생산조직인 한살림 아산시 생산자 연합회가 창립된 것은 1996년이다. 2000년 1월 21일 지역농업선포와 함께 생산자연합회의 유통 및 가공조직으로서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이 설립되었다.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의 설립과 함께 생산자연합회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1999년 회원 수 19명, 10개 품목, 생산면적 18.2ha에 불과하였으나, 2007년 말 현재 회원 수 381명, 55품목, 생산면적 540ha으로 불과 8년 만에 회원수가 20배, 생산면적은 30배가 증가하였다.
생산자 연합회의 회원 증가와 더불어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의 유통 및 가공사업의 매출액도 2001년 2억, 2002년 13억, 2003년 55억, 2004년 106억, 2005년 120억, 2006년 145억 원으로 6년 만에 무려 70배라는 놀라운 성장을 보이고 있다. 매출액은 2007년 144억 원으로 양적 성장은 정체하고 있으나 푸른들 영농조합법인은 새로운 질적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의 비약적 발전은 생산, 유통.가공, 소비의 총체적 체계(total system)로서의 지역농업 조직화의 전형적 사례를 보여준다. 즉 생산조직으로서의 한살림 아산시 생산자연합회, 유통 및 가공조직으로서의 푸른들영농조합법인, 소비조직으로서의 한살림 천안아산 생활협동조합의 삼위 일체적 유기적 관계 속에서 아산시 친환경 농업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한 살림 아산시 생산자 연합회에는 아산시의 9개면에 381명의 회원(송악면 118명, 음봉면 99명, 도고면 73명 등 3개면에 76%가 집중)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들은 그림1과 같이 각 면 지회(9개 지회)의 반에 속함과 동시에 생산품목에 따라 유기축산(5개), 푸른들채소(6개), 친환경과수(1개)의 작목반에 속하여 생산과정에서 협동한다. 각 지회별로 생산계획을 수립하고, 회장을 포함한 총 7명의 실무자(과수, 축산, 수도작)가 농민에 대한 기술지도나 생산관리, 점검 등은 담당한다. 그림2는 생산자연합회의 친환경 영농현황을 보여준다.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유기 및 전환기의 수도작 및 노지 작물이 주류를 이룬다.
그림1. 생산자조직화와 지역농업현황

그림2. 푸른들영농조합법인 친환경영농현황

유통 및 가공조직으로서의 푸른들 영농조합법인이 아산시 친환경 농업의 핵심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농조합법인에는 대표이사를 포함해 33명의 직원이 농작물 수확 이후의 모든 일 즉 농산물의 저장, 출하관리와 각종 시설관리, 식품가공공장 운영 등을 담당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고령화에 따른 지역농업의 쇠퇴를 막기 위해 영농사업단을 발족하여 고령노민들의 농작업을 대행하고 있다. 그림3은 영농조합법인의 친환경사업과 매출 현황을 보여준다. 두부.두유.콩나물 등 식품가공사업, 우리밀 가공, 쌀.콩.우리밀.감자 등의 수매사업, 채소류.곡류.가공류의 유통사업, 친환경급식사업, 농산물 건조 및 저장 사업, 유기질 비료 및 사료사업 등을 하고 있다. 그리고 2007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보면, 쌀이 전체의 46.1%, 채소가 26.8%, 가공품이 23.4%, 기타가 3.7%를 차지하고 있다.
그림3. 푸른들영농조합법인 현황 - 사업, 매출


그림4. 푸른들영농조합법인 현황 - 시설

영농조합법인은 위와 같은 사업을 하기 위해 다양한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그림4에서 보듯이 2002년에 설립된 식품가공공장을 비롯해, 친환경지원센터(2007년), 저온저장고/가공원료저장실, 물류센터, 유기농 부산물 저장고, RPC/건조장, APC, 분석실 등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회사 형태로 유기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유)푸른들 축산(2007년), 학교급식을 담당할 (주)푸른들 SFC(2008년), 육가공을 위해 (주)푸른들 식품(2008년)에 설립하였다. 그림5는 푸른들 영농조합법인의 조직체계화 사업모형을 보여 준다
아산시 친환경농업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조직은 한살림 천안아산 생활협동조합이다. 천안아산생협은 생산자가 주도적하여 만들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생협과는 다르다. 생협조합원은 약 5000명으로 주로 아산, 천안, 평택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천안에 회원이 제일 많다. 소비자의 경우 매출액 중 1%를 생산안정기금으로 적립하는데, 이는 산지에서 시작한 천안아산 한살림만 유일하게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림5은 생산조직, 가공.유통조직, 소비조직의 삼위일 체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림5. 푸른들영농조합법인 현황 - 종합모형

이상은 아산시 친환경 지역농업의 현황을 생산조직, 가공 및 유통조직, 소비조직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모든 성공담에는 눈물 젖은 이면사가 있기 마련이다. 이제부터는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이호열 대표의 육성을 통해 그 동안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고, 앞으로 어떠한 꿈을 꾸고 있는가를 시기별로 나누어서 들어보자.
유기농업을 시작해서 한살림을 만날 때까지
이호열 대표는 아산시 음봉면 산정리에서 출생하여 음봉초등학교, 영인중학교, 온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온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부터 유기농업을 시작하였다. 그 계기는 당시 종합농법연구회 정진영 회장(현재 한국유기농업협회 회장)이 아산에서 유기농업에 대한 교육을 개최하였는데, 약 100여명 참가하였다. 이 대표도 이때 교육을 받고 논과 밭 3500평에서 유기농업을 시작하였는데, 모두 종중 땅이었다. 아버지가 한량이셔서 물려받은 땅이 없었다. 교육 받은 내용을 토대로 젊은 동료 세 명과 함께 유기농업 연구를 위해 시험포장 운영하였는데, 낮에는 시험포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이를 가지고 연구를 했다. 2-3년 농사짓다가 1976년 7월 군대에 입대하여 3년간 복무했는데, 군제대후 농사를 지어야 할지, 공부를 더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서울에 있다가 아버지가 내려오라고 해서귀향하게 됐다. 고향에 내려와 2년간 동생과 함께 농사를 지었는데, 동생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학으로 공부를 했었다.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초기에는 아카시아 나무를 이용하여 하우스를 지어 농사를 지었으며, 이후 대나무로 하우스를 지어 농사를 했다. 당시 시설로 참외농사를 해 돈을 많이 벌어, 80년대 초 막내를 서울로 보내고 혼자 농사를 지었다. 처음부터 전체 농지에 유기농업을 한 것은 아니고 일부 유기농, 일부 관행으로 농사를 지었다.
당시 많은 농민들이 장리쌀 등 고리채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어, 1979년 음봉 교회를 중심으로 YMCA양곡은행을 시작하였으나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교회를 중심으로 직거래를 시작했다. 교인들에게 쌀을 팔거나, 서울지역에 쌀을 팔았는데, 쌀값을 받지 못해 돈도 많이 떼었다. 당시에는 친환경이라는 말이 없어서 그냥 무공해라고 했다. KBS에서 취재를 해 줘 소비가 많이 늘어났었다. 그러나 생산량이 많이 늘어나면서 판매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 교회 목사님하고 갈등도 많이 빚었고, 마을에서는 신앙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한다고 해서 동네하고도 마찰을 많이 빚었다.
83년에 직거래 사업을 교회에서 마을로 넘기고, 교회가 사업을 하면서 낸 수십만 원의 적자를 응봉교회 목사, 산정리 청년 4명과 함께 이 대표가 물었다. 교회에서 마을로 사업을 옮기면서 청년들 중심으로 약 40명이 모여 1982년 영농회(산정리)를 조직했는데 호응도 상당히 좋았으며, 주위에서도 많이 도와주었다. 교회에서 했던 유통망을 넘겨받아 사업을 했는데, 주로 교인들이나 서울 소비자들이었다. 1984년 서울을 여섯 구역으로 나누어 매일 1톤씩 배달을 했는데 서울지리도 잘 모르고 해서 상당히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로서는 매출이 급신장 하는 등 상당한 효과가 있었으나, 84년 소 값 파동이 오면서 내부적으로 분열 되어 3-4명만 남고 나머지는 고향을 떠났다. 이 지역은 정부의 권유로 소를 많이 키웠으며, 대대로 마을이 가난해, 자기 땅이 별로 없고 대부분 이순신장군 묘지기 마을이었다. 그래서 한번 소 값 파동이 나니까 마을전체가 무너졌다. 1985년 젊은 사람들이 몇 명 남지 않은 상황에서 농사하랴, 서울로 배달 가랴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큰 교회(광림교회), 매장, 개인들에게 대금을 못 받아 적자가 많이 나면서 86년도에 이 사업을 접었다. 1987년 초에 한 살림을 만나면서 재기를 했는데 돈을 뜯기지 않아서 좋았고, 비로소 생산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1987년 한마음 공동체를 결성하여 한살림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이후 1996년 3개면이 함께 모여 한살림 생산자회를 조직하였다.
농민운동가로부터 지역농업 조직가로
군제대후 광주 민주항쟁의 영향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음봉 교회가 운동권 교회여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84년 소 값 파동에 이은 오한석씨의 자살 사건이 농민운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가농, 기농, 자주농민회가 있었는데, 이 대표는 기독교 농민회를 하지 않고 자주농민회로 출발 하였다. 왜냐하면 농민운동이 종교의 문제라기보다는 농민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농민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산자주농민회로 농민운동을 하게 됐다. 당시 농민운동 내에서 직거래 운동은 부르주아 운동이라고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국민에게 안전하고 깨끗한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 농민의 역할이라는 근본적인 생각으로 버텨냈다. 지역운동단체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으로 통할될 때까지 자주농민회 총무역할을 하였다. 통합 후 UR 타결 전까지는 아스팔트 농사도 많이 했는데 UR이 타결되면서 농민운동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전농 출범 전 충남농민운동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조직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었다. 윗선으로 갈수로 자리다툼을 하는 것과 상부의 정치투쟁 지시로 현장운동이 안 되는 것을 보고 농민운동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됐다. 현장으로 들어가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농민회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 당시 아산시 자주농민회 회원 집에서 모여 토론을 했는데 한쪽은 현장으로 들어가자, 다른 한쪽은 농민운동을 지속하자는 쪽으로 갈라졌는데, 이 대표는 10년 정도 현장에서 활동하고 이후 농민운동 단체와 함께 하고자 했으나 잘 안됐다.
1991년 아산 미생물 연구회를 조직하여 일본의 시마모토 농법을 연구하였는데, 이때 일본 견학을 하면서 토양관리, 퇴비 만들기 등 유기농업 기술을 한 층 발전 시켰으며, 기술적으로도 자신감이 생겼다. 93년부터 현재의 농업 형태에서 한 단계 나아가고자 채소단지를 준비 했는데, 94년 UR이 타결되면서 농림부가 전국적으로 100여개의 채소단지 조성을 지원하였다. 이 대표도 지원을 받았지만 이대로 하다가는 과잉생산이 되어 문제가 있겠다 싶어 고민을 많이 해 6개월간 사업을 받아 놓고 시행을 하지 못했다. 총 33억 2천 4백만 원을 지원받았는데, 당시 53명이 참가했으며, 600-900평 정도의 철골하우스를 지었다. 아산시의 경우 1995년 시설채소 작목회를 구성하여 4개면으로 나눠 단지를 조성했는데, 이전 농민회 활동을 하던 회원 중 현장에 들어가고자 했던 사람들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처럼 전국적으로 시설채소가 과잉되면서 욕도 많이 먹고 가격도 폭락하면서 많은 피해를 봤다. 기름 때어 오이를 재배했는데 가격이 폭락하여 오이 작목회는 한 2년간 유지되다가 무너졌다. 그나마 이 대표는 오이를 친환경으로 재배하여 좀 나았는데, 농가들이 많이 피해를 보고, 부도가 나고 해서 오이작목회 회장을 그만 두었다. 그 후 가격이 회복되어 조금 나아졌는데 대부분이 친환경으로 전환했다. 친환경으로 전환한 사람은 그나마 살아남았는데, 일반농가는 대부분 망했다. 1996년 친환경농가들을 중심으로 아산시 한살림 생산자 연합회를 결성했는데, 이 대표는 음봉농장에 600평, 제2농장인 영인농장 1,200평에 주로 오이와 토마토를 재배했다.
한살림생산자연합회를 토대로 2000년 1월 지역농업 선포와 함께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여 대표를 맡고, 2002년에는 천안아산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을 창립하였다. 생산자 연합회 회원들만 푸른들 영농조합의 회원이 될 수 있는데, 회원 전원이 출자를 하고 있다. 신규 회원의 경우 영농조합에 100만원, 생협에 53,000원을 출자해야 하는데 2007년 9월 현재 약 17억 원 정도 출자금이 모아졌다. 초기에는 지분율에 의해 투표권을 주기도 했는데, 1인 1표제를 하면서 초기 출자를 많이 한 사람들한테 욕도 많이 먹고, 논란도 상당히 많았었다. 현재 배당은 10%를 하고 있는데, 잉여금을 처분할 때, 1순위 조합원에게 10%를 배당하고, 2순위 직원상여금을 주고, 3순위 사내유보를 한다. 연간 매출액은 작년기준 145억 정도 매출을 했는데, 구성 비율로 보면 쌀이 가장 크다. 쌀 농가의 경우 수매를 하면서 3.5%수수료를 내는데, 연합회 운영비 1%, 전국생산자연합회 1%, 안정기금 1.5%로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이 받아서 배분한다.
지역농업클러스터 사업을 시작하다
2000년 1월 20일경 지역농업 선포식을 갖고, 지역을 돌면서 한 살림과 지역농업에 대해 설명하였다. 초기에는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여 한 살림에 판매하자는 정도로 개념이 미흡했었다. 2001년에 2002~2004년까지의 3개년 계획을 구상했는데, 가공공장을 준비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는 구역의 회원들을 송악이나 도고 등지로 생산지를 재배치하고, 물류를 현대화 하고, 가공생산지를 선정하는 계획이었다. 2003년에 2차 3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핵심은 RPC, 물류현대화, 교육관, 저장시설, 생산 단지화라는 꿈같은 계획을 마련하였는데, 2004년에 농림부의 클러스터 사업이 결합되면서 꿈이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 없이 클러스터 사업을 신청하였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허가문제로 1년을 허비하고 2005년에는 사업비가 미집행 되고, 원래 3년 사업이지만 실제로는 1년 반 사업이기 되어 남은 기간에 몰아서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어려움이 많다.
클러스터 사업에 들어간 총 사업금액은 농림부의 클러스터 사업에서 45억 원, 아산시에서 RPC건립으로 12억원 등 총 57억원을 지원받았으나, RPC의 경우 자부담으로 토지를 빼고 15억 원 투입되었는데 앞으로 총 3억 원 정도 더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클러스터 사업을 추진하면서 농림부와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사업초기에는 자율부분이 많았는데, 점차 지침이 많아지면서 상당히 복잡해졌다. 그리고 자부담 20%로 운영하기에는 자금이 부족하여 어려움이 많다.
2005년 설립된 사단법인 아산 친환경 지역농업클러스터는 ① 혁신체계 구축 및 네트워킹 지원 사업- 지역농업 생산자 조직 강화, 친환경 농법 교육체계 구축 ② 핵심 생산기반 조성사업- 유기 축산시범 사업, 유기농산물 생산기반 조성, 유기농 식품 가공 기반 조성 ③ 산업화 및 마케팅 활성화- 경영 및 마케팅 사업 등을 주된 사업으로 하고 있다.
힘들지만 꿈은 이루어진다 ― 지역순환농업과 아산복지재단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의 성장에는 지역사회의 많은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지역농협은 초기 성장과정에서 자금대출, 친환경 농산물 수매, 운송 등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영농조합법인이 커지면서 사업적 관계는 많이 축소되고 농산물 수매과정만 일부 도와주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존폐위기에 처한 지역농협의 유통 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수확 농산물의 ‘푸른들 영농조합’ 저장고까지의 운송을 맡겨 수수료 지급하고 있다. 아산시와 긴밀한 협력관계, 아산시의 지원도 영농조합법인의 성장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영농조합법인의 역량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갈등관계도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정책사업의 지침과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다. 지역대학과 사안별로 협의하고 있으며, 특히 지역농업클러스터 사업을 계기로 긴말한 협의 체계를 형성하였다. 영농조합법인은 아산 연고 대학졸업자를 직원으로 우선 채용하고 있고, 산학협력을 위해 인근 대학에 연간 1천만 원의 장학금을 기부한다. 뿐 만 아니라 지역출신 농민 자녀들의 대학학비를 지원(현재 총 67명에게 대학 등록금 1회 지원)하여 장기적으로 지역에 연고가 있는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의 후계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이 많은 사업을 하고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았는데, 지역사회의 전체 합의 없이 본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특혜를 받았다는 등 오해와 곡해가 많아 힘들었다. 사업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나, 유기축산을 하면서 시작하면서 축산농가의 조직화는 이루었으나, 점차 무게감이 느껴지며, 한계를 느끼고 있다. 사료공장이 어려워지면서 이를 인수하기로 했는데,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느껴진다. 생산자 출자금 5억 원 과 푸른들 영농조합에서 5억원 등 총 10억 원을 모았는데, 사료공장은 전문영역이라 경영에 어려움이 있다. 사업규모가 급성장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실무력의 부재와 경영상의 어려움 등 한계에 봉착한 것 같다. 유기사료를 위해 볏짚을 1억원 어치 준비했는데, 이게 언제 활용될 지도 걱정이다.
그렇지만 지역농업의 자연 순환을 위해서는 유기축산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축산 농가는 나름대로 부를 가지고 있으나, 경종농가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경종농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경종농업과 축산의 결합(복합영농)이 필수불가결하다. 마을단위마다 공동축산을 하여 경종농업과 결합, 수익을 창출하며, 현재의 농업 형태를 수도작 중심에서 유기축산을 위한 조사료 생산 등으로 변화시킬 예정이다. 2006년부터 준비하여 현재 3군데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마을단위로 5-6명이 하는 곳, 7명이 하는 곳, 인근 마을과 결합한 곳 등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클러스터 사업에 포함되어 있는데, 축사건립에 보조 80%가 지원되며, 300평 규모로 평당 42만원이 소요되고 있다.
유기축산이 푸른들 영농조합법인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며, 이를 실현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다. 유기축산을 위해 8년 전부터 준비하였는데, 2012년이면 구체적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생각되며, 그 이후에는 30년 전부터 꿈꿔왔는데 육가공공장과 식품공장 등의 이익금을 가지고 지역농업을 위해 아산복지재단을 출범시킨 후 농사꾼으로 돌아가고 싶다.
푸른들영농조합법인 사례의 의의: 성공요인과 한계
푸른들에는 지역농업의 조직화를 위한 훌륭한 리더그룹이 존재한다. 이들은 농민운동가 출신으로 소수의 엘리트 농민이 아니라 지역의 모든 농민이 함께 살아갈 지역농업의 조직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조합원과 실무자 사이의 강한 결속력, 소비자와의 연대도 푸른들의 큰 자산이며, 지자체와 지역농협, 지역대학이 푸른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푸른들은 느슨한 형태의 생산조직화에 기초하여 생산-유통 및 가공- 소비의 조직화 즉 Total system으로서의 지역농업의 조직화가 추구되고 있다. 생산의 조직화는 친환경 농산물의 생산(계획, 교육, 관리 등)에 머물고 토지이용의 계획화 및 집단적 관리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경종농업과 축산농업의 결합에 의한 경영안정과 지역순환형 농업을 추구하고 있으나 아직은 초보단계이다. 반면에 유통 및 가공단계의 조직화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푸른들 영농조합법인은 지역농업의 활성화와 지역일자리 창출, 지역사회 공헌 등 지역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역농업조직이 순환과 공생의 지역만들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례이다. 소비의 조직화를 위해 지역 생협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지만, 생산물 판매의 대부분을 한살림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地産地消까지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은 학교급식(2007년 아산시, 평택, 공주, 천안 등에 쌀 15억 원을 비롯해 총 약 17억 원 어치의 농산물을 공급)을 통해 생산물의 지역 내 소비에 노력하고 있다. 2008년에는 (주) 푸른들SFC를 설립하여 학교급식의 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와 아산지역 친환경농식품생산자(조합원)를 연계하여 자원순환형 유기농업의 청정이미지와 공익성,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높여 지역농가의 소득증대에 기여하기 위해 도농교류 사업을 열심히 벌이고 있다. 매월 친환경농업소비자 교육과 친환경체험행사를 하고, 9-10월에는 밤 줍기 행사, 10월에는 메뚜기잡기 행사, 도시소비자 농촌일손돕기(11월), 단오제(6월), 대보름행사(2월), 여름생명학교(7-8월), 소비자 감자 캐기(6-7월) 등에 연인원 4000명의 도시 소비자가 참여한다.
그러나 지역농업조직(한살림 아산시 생산자연합회와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의 비약적 발전에 비해 조합원의 삶의 질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아산시 농업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는 지역농업조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극복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영농조합법인은 사업 규모에 따른 경영상의 어려움, 시장경쟁과 조합원의 요구 사이의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에 봉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