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개혁과 조합원 민주주의

 


농협개혁 운동의 당면과제는 ‘민주주의’의 문제


농협에 대한 농민의 불신은 어디서 연유하는가. 신뢰는 민주주의 원칙으로부터 나온다. 조합원 농민들이 주체가 되는 바른 대중노선, 그것이 농협의 민주주의이다.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거듭나는 것은 오늘 우리 농협개혁의 핵심과제 곧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 회복이다.


최근 농협중앙회의 개혁방안을 둘러싸고 ‘연합회 방식’과 ‘지주회사 방식’의 대립이 있었다. 여기에는 단순히 신용사업(엄밀히 말해 도시민 상대 위주의 은행금융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신.경 분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방식문제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연합회 방식은 현재 농협개혁(농협중앙회 신.경 분리)의 목표를 협동조합 정체성 회복으로 본다. 중앙회를 본래의 목적과 기능대로 재편하는 것, 즉 ’회원조합의 공동 이익 증진과 그 건전한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개혁하여 회원조합(궁극적으로는 조합원 농민)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농협개혁의 과제이다.


반면 지주회사 방식은 두 가지 방안―농협중앙회의 용역보고서 안과 농림수산식품부 농협개혁위원회 안으로 제출되어 있다. 중앙회 용역 안은 현 중앙회 사업 중 신용사업 부문(은행, 보험, 증권 등)은 중앙회가 출자하는 금융지주회사로 분리하고, 경제사업 부문(도소매, 가공유통, 구매 등)은 경제지주회사로 분리한다. 정부 측 농협개혁위원회 안은 현 중앙회를 전국농협경제연합회로 전환하고, 이 연합회가 출자하여 농협경제지주회사와 농협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한다. 기존 중앙회가 해온 비사업적 교육지원사업은 농협경제연합회가 담당한다.


중앙회 용역 안은 협동조합 정체성 상실 문제에 대한 대책이라 할 수 없다. 현행 사업구조의 경영위기(경영책임)를 신용사업 부문(도시민 상대의 은행금융업) 중심으로 모면하려는 중앙회 경영대책일 뿐이다. 회원조합(조합원 농민) 입장에서 진정성을 갖고 타개하여 회원조합(조합원)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은행금융업이라도 살아남으려는 안일 뿐이다.


또한 정부 측 농개위 안은 연합회 자체가 협동조합적 사업방식의 사업체라는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협동조합(지역조합이나 품목조합, 공제조합, 기타 기능별 조합 등)은 운동체와 사업체의 양 기능을 함께 가지며 그 통일을 추구한다. 그런데 운동이 추구하는 협동조합의 본래적 가치와 사업이 추구하는 경영 효율성은 모순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운동체와 사업체의 모순적 통일체‘라는 얘기이다. 이 양 기능의 균형이 파괴될 때 정체성의 위기를 맞는다. 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사업체>‘라고 정의하는 것은  조합원의 공통의 필요와 열망을 협동을 통해 기업화한 사업체로서 그 효율적 경영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즉, 협동조합에서 ’사업체로서의 효율적 경영‘은 주식회사 사기업(사적 이해, 주주 이해, 자본의 힘 등)과 달리, 조합원 편익 최대화를 위해(’이윤 최대화‘가 아님) 끊임없는 교육과 편익 제공, 헌신과 열정을 통해 ’조합원의 조합사업 출자・조합원의 조합사업 이용・조합원의 사업경영 참가‘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근본 토대로 한다. 이러한 효율적 경영의 일환으로서 조합 간 연합사업을 도모하고 연합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농개위 안은 기존 중앙회를 그대로 경제사업연합회로 전이시키고 연합회 출자로 경제 및 금융 양대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한 사업구조를 갖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연합회가 비사업적 조직이라 하지만 양대 지주회사에 출자하는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함으로써 현행 중앙회 역할과 다르지 않게 된다. 더욱이 경제 및 금융 양대 지주회사는 그 자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업모델이다. 최근 세계적 경제위기와 금융위기 상황에서 은행의 대형화, 지주회사 방식 등에 관해 자본 진영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위와 같은 지주회사 방식의 사업구조는 회원조합(조합원 농민)의 권리와 이익을 효율적으로 옹호하기 위한 협동조합 경영방식(사업방식)으로서의 연합회 체제의 본질과 동떨어진 것으로 근본 인식과 접근법이 협동조합적이라 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1988년 이른바 ‘조합장 임면에 관한 임시조치법’(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이 중앙회장을, 중앙회장이 조합장을 임명) 폐지 및 직선제 개정으로 농협민주화가 일단락되었다. 이후 급속한 수입개방과 농업구조 변화 과정에서 협동조합의 개혁과제는 경제 중심으로 전환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성격과 가치에서 볼 때, 이는 조합원 민주주의, 조합 사업의 민주주의가 경영 효율화 면에서도 추구해야 할 기본적 가치임을 은폐하는 시각이다. 민주주의 문제는 자본과 시장의 민주적 관리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미완성일 뿐이다. 특히 농업 부문(농협개혁)에서 민주주의의 실질적 구현이야말로 우리사회 개혁운동의 핵심 과제라고 생각한다.



농협 문제의 핵심은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 상실


오늘 한국 농협중앙회는 총자산 230조원, 신용사업 총 수신 120조원(‘07, 업계 4위), 16개 지역본부, 1,093개 금융점포, 17,770명의 인력(’08) 등 거대조직으로 성장했다.


중앙회 개혁의 필요성은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중앙회는 살찌는데, 회원조합과 조합원 농민은 갈수록 쇠락해져가고 있기 때문에 중앙회가 제자리를 찾아야 회원조합과 조합원 농민이 비로소 앞날을 헤쳐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형국은 사실 일선 회원조합(지역조합과 품목조합 등)과 조합원 농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조합원 농민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에 분투하는 ’자발적으로 결합된 자치적 협동조직‘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농협 문제의 핵심은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이다. 농협법 제13조에 따르면 지역농협은 “조합원의 농업생산성을 제고하고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 확대 및 유통 활성화를 도모하며,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기술, 자금 및 정보 등을 제공함으로써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을 증대함을 목적”으로 한다. 농협은 무엇보다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협동조직’으로서 생산・판매・유통・교육・신용 전반에 걸쳐 ‘협동화’를 통해 조합원의 편익을 최대화하여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는 경제사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신용사업은 이러한 경제사업 추진 과정에서 조합원이나 조합 자체 사업이 필요로 하는 자금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지역농협의 현실은 법 정신과 크게 어긋나는 ‘돈 장사’에 치중하며, 그것도 대개 농민조합원보다 비농민 조합원 혹은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이러한 신용사업의 수익으로 유지되면서 중심이어야 할 경제사업은 환원사업, 보조사업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조합원 농민의 원성을 사 불신당하고 자발적 참가와 전(全) 이용을 조직해내지 못하고 있다.


중앙회의 경우는 과연 ‘협동조합의 중앙회’인지 근본 성격을 불신당하고 있다. 중앙회의 사업은 신용사업, 경제사업, 교육지원사업 등 세 부문으로 구성되는데, 앞서 든 총 자산 중 신용사업은 95.8%, 경제사업은 2.4%, 교육지원사업은 1.8%이며, 인력 구성은 신용 76%, 경제 14%, 교육지원 10%이다. ‘07년 사업 결과 당기순이익은 1조 2,576억원이며, 신용부문 흑자(1조 4,363억원)로 경제부문 적자(1,787억원)를 보전하는 구조이다. 경제사업보다 신용사업 위주의 돈 장사만 하는 경영구조이며, 은행금융업 중심의 신용사업도 시중은행과 차이가 없고 회원조합이나 조합원 농민과 상관없다는 게 문제이다. 더욱이 이러한 신용사업 수익구조도 최근 경제위기 상황에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08년 사업 결과 신용부문 수익이 2,400억원대로 악화되어 사업구조의 근본적인 재편을 요구받고 있다.


농협법 제113조에 따르면 중앙회는 “회원(조합)의 공동 이익의 증진과 그 건전한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중앙회의 주인은 지역조합, 품목조합 및 품목조합연합회 등 회원조합이며 궁극적으로는 회원조합의 주인인 조합원 농민이다. 그러나 농업과 농민을 앞세워 도시민을 상대로 은행금융업에 치중하는 구조로는 ‘협동조합의 중앙회’라 할 수 없다. 중앙회가 하고 있는 경제사업도 산지조합과의 네트워크 구축 및 강화로 거래교섭력을 높여야 하나 대형유통업체 또는 식품가공업체와의 거래 실적이 극히 미흡하고(‘07년, 1천억원 수준) 농협 전체의 소비지 시장 (식품소매 시장 총규모 약 100조원) 점유율도 약 15%에 불과하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나마 중앙회 경제사업(구매, 판매, 가공유통, 경매 및 수매 판매 등)도 ‘07년 말 기준으로 직영 10.5조원과 자회사 15개의 3.8조원 등 총 14.3조원으로 회원조합의 공동 이익 증진을 위한 연합사업이 아니라 중앙회 자체 사업 중심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신용부문에서나 경제부문에서나 중앙회의 존립 목적이 회원조합의 공동 이익 증진에 있지 않고 자체 이익의 극대화에 있기 때문에 회원조합을 위축시키고 갈등을 일으켜 조합원 농민으로부터 불신과 비판을 받고 있다. 중앙회가 조합원의 조직이 아니라 임직원의 조직이며, 중앙회는 갈수록 비대해지고 회원조합과 조합원 농민은 갈수록 쇠락해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원인이다.



조합원 민주주의의 연합회 방식 개혁

농협중앙회를 제자리로 돌리는 개혁의 핵심은 현행 중앙회를 조속히 비사업적 기능을 담당하는 본래의 중앙회로 재편하고, 사업적 기능을 담당하는 신용사업연합회 및 경제사업연합회를 독립법인으로 분리하여 협동조합의 큰 틀 내에 두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경제부문과 신용부문 양대 연합회의 전문적 발전을 도모하며, 비사업적 기능의 본래의 중앙회는 협동조합운동의 중심 사령탑 역할을 수행, 경제 및 신용 사업연합회와 회원조합(조합원 농민)에 대한 지도.교육.감독 및 조사.정책연구.기술개발과 대정부.대국회 농민권익 실현 농정활동을 담당하도록 한다.


경제사업연합회는 지역농협, 품목농협 및 연합회, 경제 자회사로 구성한다. 현재까지 총자본금의 거의 대부분을 신용사업회계로 돌려 자본이 없는 경제사업 부문은 신용부문에서 경제사업 자금을 일반대출금보다 비싼 내부 자금 이자로 차입해 왔다. 앞으로는 이와 같이 만성적자를 본다는 경제사업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왜곡된 사업구조를 탈피해야 한다. 특히 고비용의 판매관리비 절감에 나서고 정부가 책임져야 할 자금지원사업 떠맡기 문제, 고수익이 나는 유통 및 자재 부문의 자회사 통합・조정 문제, 산지유통 지배력 및 소비지 점유율 제고를 위한 회원조합의 연합사업 활성화 등에 적극 나선다. 이를 위해 자본금의 절반 이상을 경제사업연합회에 우선 출자하되 당장에 필요한 사업 자본금을 확보케 한 뒤 나머지는 신용부문 자회사 협동조합은행에 출자, 경제사업의 독자 생존에 필요한 자금을 출자금 배당금(신용사업 수익금)으로 항구적으로 지원받도록 한다.


신용사업연합회는 회원조합의 신용사업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 조합 및 연합회 경제사업에 대한 자금 공급, 농업관련 정책자금 공급, 비사업적 기능의 중앙회 사업 지원, 비농민 상대 은행금융업, 기타 필요에 따른 금융 자회사를 운영한다. 특히 회원조합이나 조합원 농민과 관계가 없는 현행 중앙회의 은행금융업은 협동조합은행으로 분리하여 신용사업연합회의 자회사 금융기관으로 전문적 발전의 길을 걷도록 하되, 그 지배권과 잉여처분권은 회원조합이 갖도록 하여 전체 농협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새로 태어나는 중앙회의 가장 중요한 과업은 회원조합의 개혁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중앙회가 명실공히 회원조합의 공동 이익 증진을 위한 연합조직으로서 협동조합운동의 중심체 역할을 하지 못한 데는 중앙회의 주인인 회원조합에게 근본책임이 있다. 그리고 회원조합을 진정한 협동조합으로 바로 세우는 책임은 조합원 농민에게 있다. 주인이지만 주인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근본 원인은 개개의 주인에게 구할 수 없다. 중앙회와 조합의 임직원들이 주인에게 주인으로서의 자각의 기회를 갖도록 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조합 전(全) 이용 미흡을 질타하거나 주인이 협동조합 원칙과 경영에 눈을 뜨지 못하도록 해왔다. 농민운동 진영에서는 조합원 대중의 자각 기회를 협동으로 조직하지 못했다.  농협(개혁)운동의 주체역량 부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존하는 수많은 농민단체들이 있지만 농민대중을 옥죄어 온 역사적 산물인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스스로 그리고 협동하여 농부로서 인간으로서 삶을 지키고 미래 희망을 품도록 하기 위해 역사적 창조물인 협동조합 ‘운동‘을 일상적・지속적・조직적으로 집요하게 실천하지 못했다. 농민과 농민단체는 있는데 정권 교체기에 유행처럼 반복되는 농협개혁 의제를 일선 조합 단위에서부터 ’운동‘으로 지속해오지 못한 주체역량의 빈곤이 과제이다. 삶의 조건을 협동으로 개선하는 훈련과, 나아가 현재 사회경제적 질곡과 모순이 해결되는 대안사회에의 희망을 일상 속에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생산 및 생활 전반의 협동의 훈련, 사회적 약자로서 협동이 곧 현재 질곡을 타파하는 유일하고 강력한 무기임을 일상 조직활동 속에 체득하도록 하는 운동이 과제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농민대중을 압도하는 농협조직 내외 기득권 세력의 방해.교란과 농협 '운동' 주체역량의 빈곤을 딛고 진정한 개혁의 단초를 열 시발점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가. 농민 진영이 그 하나의 계기를 중앙회 사업구조 개혁운동에서 찾는 것은 차선책으로써 그 시대적 의의를 지닌다.


그동안 주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왜곡된 조직 운영과 사업 경영으로 인해 농협개혁은 악순환의 길을 밟아 왔다. 조합원 농민의 일상적 이해가 관철되는 일선 회원조합의 개혁이야말로 농민 입장에서는 더욱 절실하다. 현재 조합원 대중의 전반적 수준과 역량의 한계로 바로 총체적 개혁에 서둘러야 할 중앙회 개혁을 통해 일선 회원조합의 개혁을 촉진시키려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농업 및 조합원 농민의 일상적 이해와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는 일선 조합들을, 생산・가공・유통・소비의 총체적 조직화 주체로, 비농민을 포함한 농촌주민 전체를 포괄하는 지역사회 협동조합으로, 지자체의 지역농정 파트너로, 도농 간 상생과 순환을 조직하는 협동과 연대의 사회 조직가로 그리고 조합원 농민의 지위 향상과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 실현에 복무하는 진정한 협동조합으로 개혁해야 한다. 일선 조합을 ‘협동조합다운 농협’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농업의 미래도 지역사회의 지속도 기약할 수 없다.


이러한 회원조합의 개혁은, 한편으로는, 지역사회에서 조합원 간 이질화와 농촌지역사회 혼주화(비농민 거주 증대)에 대응하여 과거 동질적이었던 영세소농들을 대상으로 설립된 현행 종합농협체제를 재편, 농가 간.품목 간 조합원 구성의 이질화에 따른 기능별・품목별 전문조합의 육성 및 그 연합조직의 활성화를 추구한다. 그래서 산지 및 소비지 시장 점유율을 제고하고 유통 및 가공 대자본에의 대응력을 강화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세한 가족소농의 사회안전망 확보 및 생활 전반의 협동을 통한 삶의 질 공동 증진에 충실하며, 비농민 혼주화가 늘어나는 지역사회를 포괄하여 지역 전체를 협동과 연대의 원리로 구성.운영하는 지역사회 협동조합으로 분화・재편한다. 다양한 성격과 규모, 유형의 협동조합을 활성화함으로써 지역사회의  특성을 고려하고 조합원의 필요와 열망을 충분히 반영.실현할 수 있는 농협운동을 촉진하도록 한다.


농협개혁의 본질은 바로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복지.보건의료 등 생산과 생활 전반에 걸쳐 조합원 농민들의 협동을 조직해내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담보하면서 동시에 신뢰집단으로서 토대를 담보한다. 조합원 농민들을 대상화 하지 않고 자립・협동・공생의 주체로 바로 세우는 조직의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농협개혁 운동의 당면과제는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조합원의 민주주의, 조직 사업내용의 민주주의, 조직 사업방식의 민주주의‘를 포기한다면, 더 이상 ’협동조합‘일 필요가 없다. 이름을 내리고 주식회사 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이기에 배려하는 국가의 육성 책임이나 독점금지법 적용 배제(농협에서 사업하는 공동구입, 공동판매, 생산 및 출하 조정 등에서 일종의 카르텔 행위에 대한 법 적용 배제) 또는 각종 세금 면제나 인하 조치를 받을 명분이 없다. 조합원에게 최대한 봉사하고 조합원 편익을 최대화하며 공통의 필요와 열망 충족을 위한 사업을 우선하는 사업체가 아니라면 사기업의 사적 이해, 주주 이해를 위한 주식회사 기업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조합 민주주의’를 위해 ‘오래된 주인들’, 이제 나서다


지난 6월 3일 강원도 홍천군 남면농협 대의원들이 남면 복지회관에서 남면농협 대의원협의회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날 발족식에서는 대의원협의회 추진 경과보고가 진행됐고, 홍천군 농민회 남면지회 신홍균 협동조합위원장의 인사말과 김용빈 철원농협 대의원협의회장(철원군 농민회장)의 강연, 준비위원회 임원선출이 이어졌다. 신홍균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어려워진 농업 현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농협에 있지만, 농협의 힘이 농민들을 위해서 쓰이지 않고 있다. 오늘 모임은 농협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농협의 발전을 위해서 농민들이 나서기 위한 것” 이라고 했다. 이어진 강연에서 김용빈 철원농협 대의원협의회장은 “아는 만큼 보이고 실천한 만큼 바뀐다.”고 강조하며 철원농협 대의원협의회 결성과정과 그간 성과를 설명해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남면농협 대의원들은  여성 대의원과 지역을 고루 안배해서 6명의 임원을 선출했다. 이날 발족식에 참가한 농민들은 “대의원은 일 년에 두 번 손만 들어주는 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가진 줄 몰랐다”고 하면서 향후 농협발전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결의했다.(한국농정신문 2009.6.8)


최근 2,3년간 많은 지역에서 지역 조합 대의원협의회 활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농민단체들의 이.감사 및 대의원 교육도 활발해지고 있다. 일상적.지속적.조직적 농협운동의 주체역량 형성 및 강화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와 같이 지역 현장에서 ‘오래된 주인들’의 농협개혁 운동은, 중앙 단위에서 매년 정권 교체기 초반에 연례행사처럼 추진되는 농협개혁이 협동조합 정체성 회복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며, 개혁 이후에도 또다시 현실 여건을 빌미로 한 ‘경영자 지배’에 빠지지 않고 제자리를 찾도록 강제하는 근본 동력이 된다. 중앙에서의 개혁 논의 과정과 그 구체적 성과물도 지역에서부터, 아래로부터 ‘오래된 주인들의 제자리 찾기 활동‘을 촉진하는 것이어야 힘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조합원 농민들의 주인 찾기, 협동하기는 현행 농협의 틀 내에서만 이루어져온 것만은 아니다. 자주적 협동 운동으로서 다양한 실천들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농업 조직화의 주체로서 영농조합 운영, 작목반 연합사업의 조직화, 생산자 농민이 중심이 된 생활협동조합 운영, 농촌형 사회적기업 운영, 생산・생활・운동이 삼위일체 하는 영농공동체 조직화, 여성농업인센터・지역아동센터・지역자활센터 등 합법공간을 통한 지역생활협동 조직화, 지역먹을거리 살림체계를 만드는 지역사회의 도.농간 연대활동, 작은도서관.공부방.배움터.교육협동조합 등 교육협동의 조직화 등 다양한 실천들이 진행되고 있다. 마을 단위에서 혹은 읍.면 단위에서 혹은 시.군 단위나 광역 규모로 추진되는 이러한 자주적 (생산 및 생활 전반에 걸친)협동 운동이야말로 현행 농협의 개혁운동을 조직하고 조합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진정한 협동조합을 건설할 주체역량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허헌중 지역재단 기획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