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야기
농산어촌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지역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지역재단의 주된 일이다. 따라서 기획기사에서도 농산어촌 이야기를 많이 다룬다. 하지만 나는 도시도 하나의 지역이라 생각하고, 또한 요즘 우리 동네에서 이것저것 느끼는 것이 많아 그에 대해 글을 쓰려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강동구 성내동. 근처에 강동구청과 경찰서, 보건소, 시의회 등 관공서가 몰려있어 생활하기 편한 곳이다. 큰 영화관이 있어 주말엔 좀 번잡하지만 나름 조용하고 살기 좋은 곳이다. 춘천에서 살다가 집안 사정으로 이사 오면서 본가 근처에 몇 년 전 재건축한 빌라를 전세로 얻었다. 집주인은 <달려라, 하니>의 만화작가, 빌라 이름도 ‘하니빌’이다.
<달려라, 하니>는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보물섬이라는 만화책에 연재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TV 애니메이션으로 나올 만큼 인기 많은 만화였다. 만화책 좀 본 이들이라면 <달려라, 하니>의 작가가 이진주라는 걸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다소 여성스러운 이름에 난 작가가 여자인 줄 알고 있었다. 만화광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맙소사, 아저씨라니… 게다가 우리집 주인아저씨라니…….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난 한동안 집주인 아저씨와 복도에서 마주치면 <달려라, 하니>의 작가라는 사실과 개그콘서트에서 한 때 유행했던 ‘가슴이… 가슴이…….’가 자꾸 떠올라 괜히 웃음부터 나왔다.
성내중학교는 하니가 다니던 학교로, 만화의 배경이 됐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강동구에서는 하니에게 주민등록번호도 부여하고, 도로에 ‘하니길’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또한 성내중학교 근처의 근린공원을 ‘하니공원’으로 만들기도 했다. 하니와 함께 주연급 조연이었던 체육교사 홍두깨 선생이 자취하던 슈퍼도 집 근처에 여전히 남아있다. 내가 세 들어 사는 집 또한 만화가 연재되기 전부터 주인아저씨가 살고 계시다가 재건축된 것이란다.
이 동네로 이사 온 직후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구멍가게인 허름한 ‘롯데슈퍼’에 담배를 사려고 가끔 들렀다. (이 가게는 이름만 롯데슈퍼일 뿐 SSM(기업형 슈퍼마켓)인 롯데슈퍼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영 불친절하고, 현금영수증 발급받기도 어려워 언제부턴가 20m 정도 더 나가야 되는 24시간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기 시작했다. 퇴근하거나 한 잔 하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담배나 맥주를 사게 되면 덩달아서 아이들의 간식거리도 함께 사곤 했다. 집사람 또한 할인 혜택 때문에 근처에 새로 생긴 다른 편의점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가족 모두가 가장 가까운 롯데슈퍼에 아예 발길을 끊어버린 것이다.
동네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한 달 전쯤 롯데슈퍼가 폐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불친절과 불편함에 당연한 것이라 자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홍두깨 선생의 슈퍼 자취방이 혹시 하니빌과 가장 가까운 이 롯데슈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주인 아저씨에게 확인했을 때, 우리 동네에서 소중한 무언가가 하나 사라지는구나라는 생각에 괜히 서글퍼졌다.
대형마트나 SSM이 지역 상권을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문제는 지역 상권을 어렵게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체계를 외부 의존적이고, 대기업의 본사가 있는 수도권 중심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대기업의 유통체계는 가까운 지역의 농수산물보다는 가격이 싼 농산물을 본사에서 대량 구매하고 이를 유통시켜 판매하기 때문에 지역의 생산과 유통망을 붕괴시킨다. 또한 지역에서 번 돈을 본사가 다 가져가다보니, 지역에서는 돈이 순환하지 않아 지역경제시스템 자체도 흔들리게 된다.
한 기사에 의하면, 부산의 경우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 유통업체가 2008년에 3조 7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한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부산시에 내는 지방세는 연 100~200억 원에 불과했다. 그 업체의 수익이 지역의 재래시장이나 상권에서 돌았더라면, 다시 말해 우리 동네 사람의 물건을 사고, 그 사람도 우리 동네에서 돈을 썼다면, 우리 동네는 보다 살기 좋아졌을 것이다.
지역재단에서 지속적으로 진행해 온 지역리더포럼 등과 같은 여러 행사의 주요한 주제가 ‘지역의 내생적 발전론’, ‘로컬푸드’ 등 이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가 컸기 때문일 테다.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지역 내 경제가 지역 주민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유지, 변혁돼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세계화의 바람과 대기업을 포함한 다국적 회사들의 서비스와 상품은 지역경제를 계속해서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나조차 대형유통업체가 운영하는 편의점을 이용하여 지역 가게가 문을 닫는 데 일조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수도권을 마비시켰던 ‘곤파스(KOMPASU, 일본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컴퍼스‘의 일본어)’의 우산을 뒤집는 파괴력을 보며 ‘우산회사 대박 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 경제 관련 뉴스에서는 이번 태풍으로 폐기물처리업체와 농약회사의 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하더라. 나는 우리집 바로 옆 우산회사의 사장님이 짓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여러분의 동네에도 잘 살펴보면, 나와 같은 이야깃거리나 생각할 거리들이 많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글 최용재 지역재단 연구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