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  


n.jpg  09년 통계청의 농가경제 조사에 의하면 농업 주종사자 인구 중 여성비중은 51.6%로 이제 여성농업인이 없는 농업은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향후 농업의 패러다임이 단순생산에서 농식품 가공과 농산물 유통, 체험관광 등 소위 1차+2차+3차=6차 산업 영역으로 인식되면서 농업에서 여성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농업형태는 미작중심에서 점점 특작, 과수, 채소 등으로 바뀌면서 여성농업인들의 농작업 참여는 점점 증대되고 있다.

  그 뿐인가? 요즘 농촌마을의 경로잔치, 대소사는 모두 부녀회가 없으면 그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다. 체험마을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의 외부손님을 먹이고 재우는 일은 여성들의 손길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농산물 직거래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농업인들은 생산한 농산물로 복분자주를 담고, 딸기잼을 만들고, 효소, 감식초, 절임배추, 양파장아찌, 된장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규모 가공을 하여 도시민들과 직거래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농업인의 역할이 증대했다는 것이 곧 농어업, 농어촌 사회에서 그들의 지위가 향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 여성농업인의 지위가 조금은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여성도 농협에 가입할 수 있게 됐고, 마을이장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체사회의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것에 비하면 여성농업인의 지위는 여전히 낮다. 정책대상에서도 여성농업인은 배려 이상의 대상이 아니다.

  여성농업인의 농업, 농가공, 체험 등에 대한 참여 증대 및 역할 확대는 여성농업인의 삶의 질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농업생산만으로는 농가경제의 유지가 불가능한 농촌경제의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언젠가 교육 때 한 여성농업인이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다. “좋은 물건(농산물)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이제는 가공, 체험, 관광 이런 것까지 해야 하니 너무 힘들다.” 이것이 여성농업인의 삶의 현실이다.

  하지만 여성농업인들은 스스로 소규모 법인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그동안 농업의 보조자와 무급종사자로 취급되는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성농업인 CEO가 탄생하기도 하고, 스스로 도시민과 직거래를 하고 체험활동을 주최함으로써 농가경영의 주체가 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이다. 이제 여성농업인은 스스로 삶을 경영하고, 농촌을 경영하고, 농업을 경영하는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경북여성농민한마당의 우리텃밭(상주봉강) 2010.7.16하지만 여성농업인 정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여성농민에게 유일한 사회서비스 기관이었던 여성농업인센터는 2005년 사업이 지방이양된 이후로 한곳도 증가되지 못했다. 농가경영체 등록 시에 여전히 여성농업인은 공동경영자가 아닌 종사자일 뿐이다. 친환경인증이나 정책지원은 여전히 농가단위로 이루어져 여성농업인은 배제되고 있다. 심지어 가락동 농산물 공판장에서 조차도 여성생산자는 남성생산자에 비해 제품 등급에 차별을 받고 있다.

  농업정책의 담당자들은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지 않고 “농가”라는 이름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정책은 농가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농업인 중심이 아니다. 농가단위로 정책자금을 주고 교육 참여 기회를 준다. 심지어 친환경 농업대학 등의 지원의 경우, 어떤 지역은 농가 1인으로 제한하여 남편만이 수혜대상이 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책임과 권한을 나눠 갖는 분배의 평등은 여성농업인에게는 아직 그림의 떡이다. 여성농업인에게 책임은 많이 부여하고 권한은 가급적 적게 주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농업인 정책은 ‘농어촌의 미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변화는 여성농업인 자신의 변화이다. 스스로 농업과 농촌,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꾸려가는 삶의 경영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정책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소규모 농가공을 하는 여성농업인의 손맛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농촌에 인구를 늘리기 위해 귀촌, 귀농 여성을 지원해야 한다. 그들에게 새로운 일거리, 소득거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또한 현재 농촌을 지키고 있는 여성농업인에 대한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이제 여성농업인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정책 차원이 아니라 ‘농업, 농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투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도 농촌사회에서 여성농업인들의 역할이 증대하자 이를 위한 남녀공동참여 증진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여성농가공 법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고령여성들의 마을기업 참여를 증진하는 등 여성참여 정책에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여성농업인 없이는 농가경제의 유지가 불가능하고 농업의 존속이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마을의 존속 역시 불가능할 수 있다. 여성농업인은 공동체의 존속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힘이다. 따라서 농업, 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말하기에 앞서 농촌사회에서 여성의 다원적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농업과 농촌사회의 기능이 유지되기를 바란다면 여성농민을 어떻게 육성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 농업, 농촌 정책의 최대목표를 이렇게 수정하자.

  “여성이 살고 싶은 농어촌을 만들자!”

<글 오미란 전남여성플라자 정책연구실장>

* 이 글은 지역재단 소식지 '지역리더' 16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