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고의 시간과 헌신이 만들어낸 값진 결과물
 옥잠화영농조합


  옥잠화영농조합이 여성농업인의 좋은 사례인 것은 조직이 현재 여성만으로 이루어졌다거나 여성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 의미는 한 여성에 의해 만들어졌고, 당시 구성원들이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서른다섯의 도시여자가 홀로 산골에 들어와 일군 옥잠화영농조합. 그 역사는 한 여성이 시련과 극복을 통해 어엿한 농업인으로 성장하고 농촌 지역의 리더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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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서순악씨(현 엠마오 어린이집 원장, 이하 서 씨)는 영동 심천면 산골에 897평의 돌밭을 구입하고 빈집을 빌어 기거하기 시작했다. 육아 시설이 전무한 그 곳에서 고민이었던 교육 문제는 비슷한 또래 여성 주민과 공감대 형성의 장을 만들어 주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회관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엠마오 어린이집의 모태가 되었다. 당시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맡겼던 성점숙씨는 이제 그 아이가 서른셋이 돼 서울에 살고 있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하나, 둘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서 씨는 포도농사를 권유하였고, 94년 성점숙씨 등 여성농업인 다섯 명은 옥잠화공동체를 조직하여 포도잼을 만들어 소비자조합 한살림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조은식품이라는 가공공장을 설립하고, 3년 뒤에는 국내 최초로 노지 재배 포도 유기농 인증을 받기도 했단다. 옥잠화공동체의 성장에는 한 살림의 적극적인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 지금도 매출의 85%를 담당하고 있을 만큼 강한 연대를 맺고 있다고 한다.

  1996년, 옥잠화공동체는 제2기를 연다. 조은식품의 상호를 옥잠화영농조합으로 바꾸고, 서 씨는 생산영역을 후배 김도준(현 대표)에게 맡긴다. 김 대표는 대학 시절, 농촌봉사활동을 하면서 맺은 서 씨와의 인연으로 대표직까지 맞게 되었다. 현재 서 씨는 여성농업인센터
2), 엠마오 어린이집 등 교육과 복지 업무에 전념하고 있다.

  옥잠화영농조합은 2004년, 가톨릭 농민회 출신을 중심으로 한 포도농가와 힘을 합쳐 ‘한살림 영동지역 생산자모임’을 만들었다. 공동사업으로 포도 공동 선별작업을 해오다 2008년에는 한살림의 지원과 생산회원 20가구의 출자로 공동 선별장을 만들었다. 이 외에도 중점사업으로 도농교류도 하고 있다. 대보름 행사를 시작으로 야생화잔치, 포도 따기 체험행사, 생명의 텃밭사업 등 소비자들과 접촉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한살림 영동지역 생산자모임’은 중장기적으로 지역순환농업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옥잠화영농조합은 이 모임의 핵심 일원으로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 지역 기업으로 자리 잡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매결연 관계인 서울 중서부한살림지부, 대전 한살림지부 등과도 지속적으로 도농교류를 하고 있다.

  옥잠화영농조합은 현재 10가구로 구성되어있다. 초창기 5명이 200만원씩 출자해 1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자본금 1억으로 성장했다. 2009년만 해도 8억의 매출을 올렸고, 각 조합원에게 200만원의 배당금이 돌아갔다. 연 20%에 달하는 높은 수익률이다. 하루 가공 량은 딸기잼 약 2000병, 포도(음료) 5ton, 복숭아 잼 1000병 등이다. 약 10명의 직원이 일하는데, 대부분 조합원이다. 생산품목과 가공량은 한살림조합원과 협의하여 결정하고, 시설은 영동포도클러스터사업단 등의 지원을 받아 차츰 자동화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옥잠화영농조합이 꾸준한 성장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소비자 단체인 한살림의 존재, 초기 투자 이후 더 이상 큰 투자비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 2002년 잘 먹고 잘사는 법 방영 이후 매출이 급증한 점,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한 시장 확보에 나서지 않고, 일정한 수준의 생산량을 유지하는 점 덕분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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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화영농조합이 지역농민, 특히 여성들에게 도움이 됐던 것은 일자리 제공이었다. 3년째 일하고 있다는 박경란 씨는 이곳에 나와 일하면서 예전에 비해 지속적인 수입으로 계획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여유가 있어서 만족한다고 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비슷한 견해였다. 옥잠화영농조합은 초기 생산자모임에서 일찌감치 가공 업체로 전환하여 이익을 창출함으로써 농촌지역에 기여하는 회사로 성장한 것이다. 초기부터 옥잠화공동체에 몸담아 온 성점숙 씨는 서 씨의 리더십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농촌에서 조직을 만들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갈래는 대략 생산, 가공, 교육, 복지 등이다. 다섯 명의 여성이 뿌리내린 옥잠화처럼 희고 고운 꿈은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골짝에 가공공장으로, 여성농업인센터로, 공부방으로 피어났다. 그들이 걸어온 길은 작은 농촌 마을에 자리 잡고 그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을 개척한 과정이었다.

  옥잠화영농조합은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건실한 회사로 성장하여 지역농민, 특히 여성들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역여성의 고충을 대변하고 그들의 내적역량을 끄집어내기 위한 교육을 담당하고자 세운 센터는 내용면에서 아직 채워야 할 것이 많지만, 일단 그 틀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향후 활동이 기대된다. 시골 허름한 마을회관에서 시작한 어린이 교육은 이제 엠마오 어린이집이 그 맥을 잇고 있다. 이 모든 일은 30년 전,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인고의 시간과 집념, 그리고 헌신이 중요한 이유다.



1) 이에 대한 이야기는 2009년 겨울, 살림(한살림 소식지)에 실린 “사람이 꽃 되고 꽃이 사람 되듯이_ 충북 영동 옥잠화공동체를 일군 서순악 생산자”와 http://blog.dreamwiz.com/huksan/5780304 "충북 영동 엠마오 어린이집 원장 서순악“에 자세히 나와 있다.
2) 영동 여성농업인센터는 정부의 농촌정책을 일선에서 대행하는 기관이다. 여성농민들을 위한 교육, 상담 등 각종 지원을 한다. 여성교육프로그램으로 들꽃잔치, 바느질모임, 국선도체조 등이 있다. 그러나 내부 능력, 지리적 한계로 인해 뚜렷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센터의 주된 활동은 엠마오 어린이 집 운영이다. 교사 4명, 직원 3명이 영유아 20명, 방과 후 공부방 20명 등 주로 심천면 일대 아이들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돌보고 있다.

<글 심현섭 지역리더 편집위원 / 두루지역디자인 대표>

* 이 글은 지역재단 소식지 '지역리더' 16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