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최고의 선물
송윤섭 안남 어머니학교 교장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 불리는 ‘차드’(Chad)라는 국가는 문맹률이 90%에 달한다고 한다. 최빈국이라는 현재의 상황보다 앞으로의 미래 또한 어두울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절망적으로 다가오는 수치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고(故) 박용하씨는 현지 어린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차드 최초의 학교인 ‘요나 스쿨’(YONA SCHOOL)을 세우기도 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문맹률은 제로에 가깝다. 유난히 높은 교육열과 한글(훈민정음)이라는 우수한 문자 덕분이다. 하지만 이 수치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군소도시의 어르신들, 특히 할머님들이 그렇다. 어려운 시기에 태어났다는,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림의 혜택을 받지 못한 그들. 하지만 그 누구도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 다행스럽게도 안남 어머니학교의 송윤섭 교장은 잘 헤아리고 있는 듯했다.

소외된 이들에게 즐거움을!s_IMG_0092.jpg
   옥천에서 가장 작은 면인 안남. 매주 화, 금요일 아침 9시가 조금 넘으면 안남면사무소 2층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학생들로 가득 찬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어머니학교의 수업이 있기 때문이다. 안남 어머니학교는 주민 자치에 대해 고민이 많던 송윤섭 교장에 의해 2003년 탄생했다. “특별한 의도가 있기 때문은 아니었어요. 단지 어려움이 많은 농촌에서도 가장 소외됐다고 볼 수 있는 할머님들이 즐겁게 사셨으면 하는 마음이 컸죠. 한글을 모르면 생각보다 제약받는 사항이 정말 많거든요.”
   처음엔 학생들을 모집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했단다. 하지만 생각보다 열렬한 반응에 놀랐다고. “지역에서 이런 호응이 있기란 쉽지 않거든요. 안남엔 배움에 목말라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 모습을 보며 꼭 해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게 생겼습니다.” 이런 생각에 송 교장은 학교 설립 제안을 넘어 스스로 교장 직까지 맡았다. 거기에 자원봉사선생님까지 모으는 열성까지 보였다.

안남에서의 새로운 시작
   안남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송 교장. 하지만 정작 그는 안남도 옥천도 아닌 전북 정읍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시 농과대학을 택했고, 관련 동아리에서 학생운동을 하면서 지역의 주민자치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어요. 귀농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때문이죠.” 옥천, 그 중에서도 안남을 택한 이유를 묻자 그는 “학교 선배가 안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거든요. 이유가 참 단순하죠?”라고 말하며 특유의 기분 좋아 보이는 웃음을 보인다.
   옥천에서 그는 농민회의 창립 멤버가 된다. 옥천농민회는 안남, 안내, 청성의 3개면이 함께 활동하고 있는 작은 규모지만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그는 농민회에서 간사와 사무국장을 걸쳐 회장까지 지냈다. “보통의 농민회는 구성원끼리만 잘 단합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지역 내에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잘 협동하자는 생각이었죠.” 옥천농민회는 농업뿐만이 아닌 다른 사회적 문제에 관련된 활동도 하고 있다. 어머니학교도 이런 활동 덕분에 잘 정착될 수 있었다고.

배움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발견하다
   송 교장은 어머니학교의 할머님들이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가치s_IMG_0093.jpg를 찾아낸 것 같다고 말한다. “어머님들이 자식들에게 자랑거리가 생기셨다며 좋아하세요. 또 수업은 웬만하면 꼭 오려고 하시죠. 멀리 떨어진 자녀분들 집에 가셨다가도 수업일이 되면 꼭 옥천에 내려오세요.” 학생들 가족의 반응도 상당 부분 달라졌다고. “명절 선물로 크레파스나 연필, 공책 등의 학용품을 사온대요. 그러면서 굉장히 뿌듯해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할머님들이 느낀 삶의 재미가 자식들에게도 확장된 것이다.
어머니학교에서는 한글 수업 이외에도 기본적인 생활문화에 대한 교육도 이뤄진다. “노인 분들이 느끼는 불편함이나 어려운 점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스스로 해소하실 수 있게 교육하고 있어요. 은행 출입에 관한 것이나 저울사용법이 대표적이죠.” 또한 학교라는 체제답게 소풍, 학예회 같은 활동도 이뤄진다. “공부만 하면 학교 다니는 재미가 없잖아요. 또 어머님들이 배운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실 수 있게 노력하고 있어요.” 덕분에 글짓기 대회에 나가 학생 몇몇이 상을 받는 쾌거도 이뤘다고 한다. 교실의 한쪽 벽에도 수상한 작품이 크게 프린트 돼 걸려있었다.

   글을 몰라서 늘 죄인과 같은 맘을 버릴 수 없었다는 한 할머님. 글을 몰라서 은행이나 동사무소에 가면 늘 불편을 겪었다는 또 다른 할머님. 그들에게 어머니학교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할머님들이 입을 모아 말씀하신다. “자유를 선물 받은 느낌이야. 여든이 다 돼서 이런 행복을 느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나이를 먹어도 배우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희망, 이제 혼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유. 송 교장이 안남의 할머님들께 드린 최고의 선물이다.

글 최은영 지역재단 홍보출판팀 간사


* 이 글은 지역재단 소식지 지역리더 17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