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의 주인은 농민이다 _ 농협개혁에 농촌의 미래를 건다 춘천토마토생산자협의회 회장 이재환
 춘천 이재환 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스산했다. 내일의 강추위를 예고하듯 바람이 거칠고 구름은 어두웠다. 몇 시간에 걸친 인터뷰의 내용은 대부분 농협이야기였다. 그는 농촌의 미래는 농협개혁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농협이 설립목적에 따라 그 정체성을 유지하면 우리 농민은 분명히 잘 살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대화를 곱씹으며 돌아오는 내 머릿속은, 농협에 대한 생각으로 날씨만큼 뿌옇고 복잡했다.
|
농협 개혁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제대 후, 사료대리점 등 사업을 하다가 15만평 규모의 농사를 지었어요. 더덕, 황기 등을 재배했는데 중국산에 밀려 큰 실패를 경험했죠. 2001년에는 이 자리에 토마토 하우스를 세웠어요. 처음에는 농협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죠. 하지만 농협의 권위적이고 무원칙적인 행태와 금융 거래의 내막을 알게 되면서 화가 났어요. ‘이래선 안 되겠다, 한번 파헤쳐 보자’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지금 여기까지 오게 한 거죠.”
신북농협 개혁에 관여하셨던데, 뭐가 제일 문제던가요? “이 사람들이(농협임직원) 법을 안 지켜요. 농협 임원들도 이 법을 잘 모르고, 농민들은 더 모르니 회의라고 가보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얼버무려 끝내고 술 한 잔 하고 헤어지고 그러는 거예요. 임원이래야 따지면 친척, 이웃 간이니 더 그런 식이 되는 거지. 100억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는 조직이 규율도 감시도 없는 상태에 방치되어 있으니 부패할 수밖에 없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 몫이에요. 농협은 자산운용을 잘해서 그 이익으로 농자재 싸게 공급하고 금리 낮춰주고 생산유통을 뒷받침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점을 바로잡아보고자 제가 대손처리 등 정산을 투명하게 하고 토의내용을 따지고 결의된 사항을 다음 회의에서 체크하는 일을 반복했어요. 제가 주장한 건 그거예요. ‘만들어진 규정에 따라 원칙대로 운영하자. 그러면 농민들에게 이익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죠. 상생이 아닌 서로 죽이는 구조가 되어있다는 것도 문제예요. 농협 운용비용이 농민이자에서 나오다보니 농민이 잘 살면, 즉 대출 받을 필요가 없으면 농협 자체가 운용이 안 돼요. 그러니까 조합원인 농민을 잘 살게 할 이유가 없는 조직이 되어 있는 거죠. 이렇다보니 생산증대, 유통개선 등 농민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경제활동을 등한시하는 조합으로 변질되어 버렸죠.” |
목소리가 높아졌다. 바람에 펄럭이는 비닐소리가 요란했다. 삼십 여 년 동안 거친 노동을 대변해왔던 이재환 님. 그의 굵고 거친 손마디에 끼운 담배에서 오르는 회색연기는, 지나온 세월의 궤적처럼 흔들거렸다. 농협과 농민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궁금했다. “처음엔 ‘저 놈이 농협 다 망친다’고 했죠. 농협이야 당연하지만 조합원인 농민들도 부정적인 반응이었어요. ‘다 몰라서 그런 거다’라고 생각하고 대의원과 농민들을 대상으로 농협 교육을 시작했어요. 1년에 10회 이상 했지요. 당시 지역재단에서 수고를 많이 해줬어요. 교육받은 사람들이 총회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따지고 하니까 농협이 조금씩 변하더라고요. 처음에 오해받고 그럴 때는 사람 보는 것도 싫고 정말 죽을 지경이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사람들이 ‘이재환 덕분에 우리가 이익 본다’는 말을 종종 해요.”
끈질긴 힘의 원천이 궁금해졌다. 무엇이 그 모진 과정을 견디게 한 것일까. 종교는 없다고 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의 희생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득을 보는 게 좋아요. 맘이 뿌듯하고 스스로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성격인 것 같아요. 농협운동하면서 구치소에 갈 때도 ‘내가 들어가서 조합원들이 좋아지면 고맙지’라는 생각이었어요. 성격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편이에요. 타고났죠.”
차리던 부인 분이 “저 사람은 안되는 게 없어요.”라고 덧붙인다. 정리하자면 이런 것이다. 적극적이고 남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성격의 소유자가 있다. 그 사람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그 어려움을 농협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그러다 농협의 모순을 보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혁에 나선다.
내친 김에 지역리더의 조건을 물었다. “먼저 사심이 없어야 해요. 마음가짐이 좋아야지. 리더라는 조건을 가지고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하면 개인도 조직도 지역도 다 끝이 안 좋을 수밖에 없어요. 폭 넓은 시야, 희생정신 등도 중요하죠. 하지만 농촌 리더가 되려면 무엇보다 자기 농사를 잘 지어야 해요. 농사일을 제대로 못하면서 이 일, 저 일 휩쓸리면 인정 못 받아요. 잠깐은 몰라도 길게 못가는 거죠.”
그는 1만평 부지에 토마토하우스 53동을 경영하는 전업농이다. 매출은 연 5억 정도를 오르내린다. 춘천시토마토생산자협의회 회장으로 생산자 조직의 전위에 있다. 좋은 품질, 높은 생산량을 통한 소득 증대를 위해 회원들과 함께 토마토를 연구하는 일에 열심이다. 농협개혁운동 이후에는 2003년부터 전국농민회 신북지회장직을 맡고 있다. 의식 있는 농민의 입장에서 지역리더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
향후 계획은 어떻습니까? “신북농협의 개혁을 하면서 농협운동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농협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걸 느꼈어요. 영서지역 원예농업인들이 모인 춘천원예농협에서 시설채소작목반연합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모범적인 농협의 전형을 꿈꾸고 있어요. 농협의 설립목적에 맞는, 농협법을 준수하는 원칙 있는 운영을 하여 농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농협을 만들 겁니다. 조만간 성과가 나오겠지요.” |
2010년 12월 8일, 농협법 개정안의 국회통과가 무산됐다고 한다. 신경분리가 그 골자인 것으로 아는데, 적절성의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듯하다. 농협 개혁의 현장에 있었던 이재환 님과 장시간 이야기를 하며 얻은 결론은 법안 개정에 앞서 각 지역단위 농협들이 현행 농협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농민들이 속히 주체적인 조합원이 되어 한낱 심부름꾼에 불과한 사람들의 농단에 놀아나지 않길 바란다. 농협 개혁의 기초는 이것에 있기 때문이다.
글, 심현섭 지역리더 편집위원 / 두루지역디자인대표
* 이 글은 지역재단 소식지 '지역리더' 18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